“외상센터가 눈덩이 적자? 국비 지원금 빼고 계산하니 그렇지”[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8일 03시 00분


또 하나의 이국종, 조현민 제주외상센터 과장

같은 병원 안에서도 돈을 잘 버는 과와 아닌 과는 ‘신분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대우나 발언권이 다르다고 한다. 조현민 제주권역외상센터 과장은 22일 “외상센터가 수익은 안 나지만 그렇게 엄청난 적자를 내는 곳도 아니다”며 “외상센터를 처음 유치할 때의 초심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주=서영수 객원기자
같은 병원 안에서도 돈을 잘 버는 과와 아닌 과는 ‘신분이 다르다’고 할 정도로 대우나 발언권이 다르다고 한다. 조현민 제주권역외상센터 과장은 22일 “외상센터가 수익은 안 나지만 그렇게 엄청난 적자를 내는 곳도 아니다”며 “외상센터를 처음 유치할 때의 초심들이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제주=서영수 객원기자
이진구 논설위원
이진구 논설위원
《2011년 석해균 선장을 수술한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당시 빠지지 않고 받은 질문이 “골든아워가 뭡니까?”였다. 두 번째는 권역외상센터. 9년여가 지난 지금 국내에는 14곳의 권역외상센터가 운영 중이고, 골든아워를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에 비해 중증 외상에 대한 인식은 많이 부족한 상태. 최근 이 교수의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사임은 그 간극이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한외상학회 이사장을 지낸 조현민 제주한라병원 제주권역외상센터 과장(54)은 “양적 팽창을 인식과 지원이 따라가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잘못된 정보가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잘못된 정보라면 예를 들어 어떤 건가.

“바이패스(bypass)를 외상센터가 더 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어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으로 쓰는데 그런 뜻이 아니다. 응급환자는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옮기는 게 원칙이지만 시설·인력상 그곳에서는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될 때 건너뛰고 치료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는 거다. 능력이 안 되는 곳에서 시간을 소비하면 골든아워를 놓치니까.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바이패스한 환자들이 오는 곳이 외상센터다.” (병상이 없어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경우는 있지 않나.) “그건 ‘수용 불가’라고 하는데… 한꺼번에 많은 환자가 몰리면 병원 간 전원을 시킨다.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는 좀 특별한 경우고 다른 곳은 그렇게까지 중환자실 병상이 모자라 못 받지는 않는다. 적자 덩어리라는 것도 알려진 것과 좀 다른 면이 있다.”

※2017년 기준 아주대병원의 중환자실 병상가동률은 175.4%였지만 다른 곳은 50∼80%대다.

―외상센터가 환자 한 명 치료할 때마다 평균 145만 원이 손해라는데 아닌가?

“병원에서 국가지원금은 당연히 받는 거라 생각하고 손익계산에 포함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일 때 계산해봤는데 진료 수익 면에서 센터가 번 돈과 쓴 돈이 얼추 비슷했다. 국가지원금 정도는 남았다는 말이다. 국비 지원을 안 받아도 수익은 안 나겠지만 적자가 눈덩이처럼 엄청나게 불어나는 것은 아니다.”

―병원은 굉장히 힘들다고 하는데… 그렇게 힘들다면 애초에 신청을 안 했으면 되는 것 아닌가. 돈이 안 된다는 걸 몰랐을 리도 없고….

“초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건데… 처음에는 지역 대표로 부각되고 선전효과도 커 경쟁이 치열했다. 지정만 되면 나라에서 지원금으로 80억 원을 줬고. 그런데 의사, 병원, 관련 기관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중증외상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하다 보니 점점 더 힘들어진 거지. 선진국에서는 닥터헬기가 내리는 외상센터 지역은 부촌이 많다. 안전한 곳이라고. 우리는 집 값 떨어진다고 아우성이다. 이국종 교수가 울분을 토하는 것도 같은 병원 내 의료진조차 인식이 형편없으니까. 왜 짐 덩어리를 가져와서 우리가 고통분담을 해야 하느냐는 소리도 나오고….” (외상센터를 의사들이 가져온 게 아니지 않나. 결정은 경영진이 한 것 아닌가.) “그러게 말이다.”

―제주한라병원도 민간 사립병원인데 괜찮나.

“이사회와 병원장의 의지가 좀 강하다. 제주는 섬이라 골든아워 안에 육지로 보내기 힘든 경우가 많다. 헬기로 부산으로 이송했다가 강풍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그런 특수성 때문에 경영진이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고 했다고 한다. 돈 생각하면 못 하는 일이다.”

―외상센터를 큰 병원이 함께 하는 게 아니라 국가 전담으로 만들자는 주장도 있다.

“외상센터만 독립적으로 만드는 건 효과가 없다. 중증외상은 한두 곳만 다친 게 아니다. 큰 사고를 당한 경우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도 있고, 감염 우려로 내과 협력도 필요하다. 지병이 있으면 해당 전문의도 필요하고…. 본원에 있는 다른 진료과와 늘 협력해야 한다. 그래서 병원이 얼마나 의지를 가졌는지가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정부 지원이 적은 것도 아니다. 수가도 인상됐고, 중증외상 환자가 되면 암처럼 본인 부담이 5%로 준다. 물론 엇박자가 있기는 하지만.” (엇박자?) “진료비 삭감인데, 과잉진료를 막자는 취지는 알지만 중증외상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 추락 사고를 당한 환자는 몸 안 상태가 어떤지 눈으로는 모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사해야 하는데 이상이 없으면 왜 불필요한 검사를 했냐고 진료비를 삭감당한다.” (검사를 해야 어디를 다쳤는지 알 것 아닌가.) “당연하지…. 갈비뼈가 부러졌으면 가슴 컴퓨터단층촬영(CT)은 인정, 그런데 뇌출혈은 없는 걸로 나오면 머리는 정상인데 했다고 삭감. 이런 식이다.” (그게 말인가 방구인가?) “웃기지만 현실이다. 그럴 때 ‘꽝 났다’고 하는데… 검사했는데 이상 없을 때 쓰는 우리 속어다.”

―설명하면 되지 않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학 지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자료를 보낸다. 이의 제기도 하지만 답변이 오는 데 반년 걸린다. 일도 산더미인데 어느 세월에 그걸 하고 있나.” (삭감되면 병원에서는 뭐라고 안 하나.) “전에 있던 병원에서는 중증외상 환자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갈비뼈 골절 수술을 시작하고 나서 너무 많이 삭감당하니까 병원에서 구상권을 청구했다.” (월급에서 깠다고?) “그런 거지…. 처음에는 경고를 하고…. 나중에는 대학총장이란 사람이, 설립자인데… 직접 환자 보호자에게 수술하면 안 된다며 취소시켰다.” (갈비뼈가 부러져서 하는 수술을 취소시켰다는 건가.) “그랬다. 그래서 그만두고 나왔다.”

3월 문을 여는 제주권역외상센터.
3월 문을 여는 제주권역외상센터.
―올해 권역외상센터 예산이 왜 삭감된 건가.

“하…. 작년에 외상전담전문의 인건비 31억 원이 남았는데, 기가 막힌 게 왜 못 썼냐면… 사람을 못 구해서다. 그래서 못 쓴 걸 불용예산이라고 삭감했다. 안 그래도 근무환경이 열악해서 사람이 없는데 삭감하면 이젠 무슨 돈으로 뽑나.”

―당신은 어떻게 근무하나.

“응급의학과 1명, 외과나 흉부외과 등 외상외과 2명 이렇게 3명은 365일, 24시간 상주한다. 환자가 오면 10분 안에 진료해야 하니까. 흉부외과는 나를 포함해 2명인데 한 달에 절반씩 밤을 새울 수는 없으니까 본과에서 2명을 야간 당직만 지원받는다. 그래서 한 달에 6∼8번 정도 새운다.” (밤 새운다는 게 저녁에 출근해 아침에 나오는 건가?) “아니, 24시간. 아침에 회진하고 퇴근한 뒤 다음 날 정상 출근한다. 3일에 한 번 밤새우는 거지. 주말, 명절 그런 거 관계없다.” (휴가는 어떤가.) “있기는 하다.” (있기는?) “유명무실하긴 한데 환자가 안 좋을 땐 갈 수도 없고, 또 내가 빠지면 남은 사람에게 당직이 몰리니까. 부산센터장 때는 거의 못 갔던 것 같다. 회의도 많고, 외상센터는 사건 사고와 밀접해서 언제 뭐가 벌어질지 모른다. 작년 5월 해군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 행사에서 밧줄이 끊겨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을 때는 청와대에서 찾고, 참모총장 브리핑도 했고… 쉬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는데 국내에 외과 전문의가 6000여 명, 정형외과 6000여 명, 흉부외과 1000여 명, 신경외과 2700여 명이다. 이보다 많은 곳은 내과(1만5000여 명), 가정의학과(6400여 명)뿐인데 그 많은 외과 의사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

“외과 흉부외과 전문의가 자기 전공과목을 하지 않고 일반의로 개업해서…. 성형외과도 하고….” (성형외과 전문의가 1900명뿐인데 성형 수술을 하는 곳은 수천 곳이 넘는 게 그건가?)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전문의가 아니라도 배워서 할 수 있으니까. 성형 개원의 중에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사람이 많다. 외과 분야의 사람 자체가 없는 게 아니다. 외상 분야가 힘들다 보니 기피하는 거지. 그래서 외과계열 의사를 더 많이 배출한다고 해결될 건 아니라고 본다.”

※성형외과 전문의는 ○○○성형외과의원으로 간판을 단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경우 ○○클리닉, ○○성형센터 식이다. 전문의 수보다 성형을 하는 곳이 훨씬 많은 이유다. 지난해 1분기 기준 전국의 전문의 성형외과는 959곳뿐이다.

―그렇게 힘든데 당신은 왜 그만두지 않고 제주까지 온 건가.

“부산센터장으로 있는데 이곳에서 센터 개소를 도와달라고 해 작년 7월에 왔다. 제주는 3월에 문을 연다.” (센터장이 아니라 과장으로 온 이유가 있나.) “하하하, 왜 낮아졌냐는 뜻인가? 그런 건 상관없고…. 부산센터장을 4년 넘게, 작년 12월까지는 대한외상학회 이사장도 2년 반 했는데 행정일이 너무 많다 보니 내가 의사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오더라. 그냥 환자를 보는 게 더 행복해서 그런 것뿐이다. 외상센터에 대한 지적도… 미국도 60∼70년 동안 외상센터가 문을 닫고 다시 여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어디나 그런 진통을 오랜 기간 겪은 뒤 정착된다. 우리는 2014년부터 개소했으니 아직 제대로 자리도 잡지 못했는데 다른 국가사업처럼 효율성 등을 너무 따지는 점이 안타깝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조현민#이국종#외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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