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법인 최고경영자(CEO)와 상담하던 중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다. 과음과 무리한 산행으로 동종 업계 동료 CEO 두 명이 연달아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비상장법인은 CEO의 존재가 절대적인데, 갑자기 유고 상황이 발생하면 남은 가족과 회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궁금해했다.
대부분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비상장법인은 CEO 유고 상황이 발생하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매입·매출처 관리를 비롯해 종업원, 재무관리 등 회사의 운영, 영업과 관련된 모든 것이 CEO 한 사람의 능력에 달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CEO의 부재는 회사의 커다란 리스크로, 결국에는 회사의 존폐를 걱정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금융기관 대출이 있는 법인이라면 상환의 압박과 함께 채무불이행 시 기업 부채가 연대보증을 선 CEO의 개인 부채로 전환된다. 결국 회사의 부채가 가족의 부채로 전이(상속)되는 재무적 리스크 상황에 놓이게 될 수도 있다.
CEO가 아닌 일반 근로자와 가족은 이러 유고 상황이 발생하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에 의거해 유족보상금을 지급받게 된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근로자들의 산재사고 발생 시 선(先)보상을 해주고 사후 보험료를 고용주에게 정산 받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다면 법인 CEO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상장법인의 CEO는 산재법에 의거 유족보상금을 지급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산재보험 특례 대상에 특정 조건의 중소기업 사업주도 포함돼 있다. 현재 개정된 산재법에 따르면 300인 미만 근로자를 사용하는 중소기업 사업주거나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으면 수혜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공단 승인은 사업장 상황에 따라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렵게 보장을 받게 돼도 일일 보장급여한도가 정해져 있어 필요한 보장액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비상장법인의 CEO는 산재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그렇다면 CEO 유고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법인 정관을 잘 정비할 필요가 있다. 정관은 법인의 헌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많은 CEO는 정관의 존재를 알고 있으나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무슨 내용이 포함됐는지, 어떤 내용이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일단 임원 유고 상황 시 발생할 재무적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관에 ‘임원의 유족보상금지급기준’을 신설해야 한다. 법에는 지급 기준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보통 산재법에서 정하고 있는 근로자에 대한 보상 기준을 준용해 임원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제도를 정비해두면 CEO 유고 시 법인은 지급 기준에 의거해 발생한 보상금을 유족에게 지급할 수 있다. 유족들은 이렇게 지급받은 유족보상금으로 대출금 상환, 상속세 납부재원 등으로 사용하면 된다. 물론 법인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을 만큼의 자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관에 제도는 갖추었지만 유동성이 부족하면 유족들은 여전히 재무적 리스크 상황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럼 수억 원에 이를 수 있는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은 보험사에 위험을 이전하는 방법이다. 즉, 법인자산으로 보장성 상품에 가입하고, CEO 유고 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을 지급받아 그 자금으로 정관의 지급기준에 의거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CEO는 친구 두 명이 숨진 이후 필자에게 유족보상금을 준비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밖에 다른 CEO들도 산재법으로는 CEO 유고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난 뒤 보험 상품 가입을 고려 중이다. CEO 유고는 언제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 언제 발생하더라도 대비해야 한다. 보험으로 이런 준비를 할 수 있다. 가입 시점부터 약속한 재무적 필요금액에 대한 보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산재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자구적인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비상장법인을 영위하고 있는 CEO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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