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바그너와 드뷔시는 여러 여성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다. 지휘자 카를 뵘은 나치 추종자였다. 이런 이유로 이런 예술가들의 업적까지 싫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선(善)과 미(美)는 다른 영역으로 고대에 이미 규정됐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대상이 인류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려 한 정신의 스승들이었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자신의 주변에도 빛을 주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인간의 앞길을 비춰 줄 수 있다는 말인가”라는 생각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스스로 인류의 행복을 증대시킬 통찰력을 지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세탁부 테레즈를 유혹해 결혼식을 치른 뒤 줄곧 아내를 ‘천하고 무식한 계집종’이라며 멸시했다. 테레즈와의 사이에 아이 다섯 명을 낳았지만 모두 고아원에 ‘내다버렸고’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당시 고아원에 들어가 성년까지 살아남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불로소득자에게 잔인할 정도로 증오심을 보였던 마르크스는 생애 마지막 15년을 연금을 비롯한 불로소득으로 살아갔다. 군주제를 혐오한 입센은 군주국들이 주는 훈장들에 ‘수집하듯’ 집착을 나타냈다. 톨스토이는 청년기부터 세상의 도덕적 사부가 되고 싶었지만 매춘부를 찾아다니고 소작농 여인들을 유혹하는 데 골몰했다. 이런 식으로 사르트르와 촘스키에 이르는 ‘정신의 거인’들이 이 책에서 자신의 ‘벽장 속 해골’들이 꺼내지는 수모를 겪는다.
이 책의 원서 ‘Intellectuals’는 1988년 처음 출간돼 지식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영국의 대표적 우파 논객인 저자는 마거릿 대처 총리의 고문 겸 연설문 작성가로 활동했다. ‘성직자의 역할을 대체한 지식인들’의 역사적 과업에 눈을 흘기고, 마르크스주의를 ‘태생부터 과학과 거리가 멀다’고 질타하는 데 그의 정신적 배경이 읽힌다.
한국 사회는 좌우를 떠나 유난히 지식인과 학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올해 대대적인 검증의 계절도 예고돼 있다. 많은 정치인과 정치 지망생들이 ‘한때의 실수’에 대해 사죄의 눈물을 흘린 뒤 접근해 올 것이다. 그 전에 한 번 이 책을 펼쳐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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