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폐허에서 싹튼 문화 황금기… 파리가 예술로 물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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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파리는 언제나 축제/메리 매콜리프 지음·최애리 옮김/각 592쪽, 640쪽, 484쪽·각 2만6000원, 2만6000원, 2만3000원·현암사

화려한 문화가 꽃피었던 시기의 파리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IMDb 제공
화려한 문화가 꽃피었던 시기의 파리로 떠나는 이야기를 그린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IMDb 제공
프랑스에서 ‘유재석’급 인기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가드 엘마레의 2017년 미국 공연 중 한 장면이다.

“미국인들은 파리를 참 좋아해요. 제가 파리에서 왔다고 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파리의 이야기를 늘어놓아요. 다 듣고 난 뒤 전 이렇게 말했죠. ‘도대체 그 도시는 어딥니까?’”

파리에 관한 미국인의 판타지를 총망라한 또 다른 콘텐츠로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년)를 꼽을 수 있다. 1920년대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나 장 콕토,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를 만나고 19세기 말에는 로트레크, 드가, 고갱을 마주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파리가 낭만의 ‘원천’인 셈. 2010년대를 사는 엘마레가 당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는 세계인이 동경하는 낭만적 시기 파리의 문화사를 3권에 나눠 다룬다. 정확한 시기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직후인 1871년부터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다. 인상파 작가인 모네, 마네를 비롯해 에밀 졸라, 드뷔시,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샤갈, 프루스트, 샤넬, 만 레이, 르코르뷔지에…. 문화사가에게는 쓸 거리 가득한 화수분 같은 시기다.

1권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는 프로이센군에게 점령당하고 끝내 패전한 직후를 다룬다. 먹을 게 없어 쥐까지 잡아먹어야 했던 참혹한 비극이 파리지앵에겐 상처로 남았던 때다. 이때 예술가들은 전통을 벗어나 조금씩 ‘개인’의 가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권은 파리로 찾아온 스페인 청년 피카소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1900년 열린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아프리카의 강렬한 시각 언어를 비롯한 유럽 밖 문명의 발굴을 파리는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이사도라 덩컨, 스트라빈스키, 장 콕토 등 많은 예술가가 ‘빛의 도시’로 이끌려 찾아왔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 ‘바토 라부아르’에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막스 자코브 등이 예술로 파리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군복을 만들고, 과학자인 마리 퀴리는 이동식 엑스레이 팀을 꾸렸다.

전쟁 후 파리는 ‘재즈 시대’, ‘광란의 시대’로 불리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3권 ‘파리는 언제나 축제’가 다루는 시기다. 과학의 비약적 발전은 물론 코르셋 없는 티셔츠 같은 코코 샤넬의 패션 혁신이 일어난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전쟁으로 파괴된 집들을 위한 ‘돔-이노 시스템’(표준화된 모듈식 주택)을 제안한다.

특별한 주제를 갖고 있다기보다는 파리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의 방대한 문화사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그때 그 시절’ 파리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가들의 파리#메리 매콜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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