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각자 소유한 재산을 처분하는 것과 관련해 누리는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의 핵심이다.”
지난달 28일 민법 제1112조의 유류분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서울중앙지법 민사27단독 권순호 부장판사는 위헌제청 결정문을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유류분 제도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고 규정한 헌법 제23조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상속인)의 유류분에 대해 규정한 민법 제1112조는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피상속인)의 직계비속(자녀)과 배우자는 각각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부모)과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로 정해 놓았다.
권 부장판사는 피상속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이처럼 획일적으로 정해져 있는 비율이 재산 처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봤다. 재산의 형성 및 유지에 기여한 정도나 피상속인의 생존시 부양 정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유류분을 정해 놓은 것은 재산 처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권 부장판사는 “(피상속인의) 재산 형성과 유지에 대한 아무런 기여가 없고 부양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불효나 불화 등으로 관계가 나빴던 자녀나 부모, 형제자매에게까지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3분의 1에 해당하는 불로소득이 무조건 상속되도록 피상속자를 강제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권 부장판사는 또 “절대적인 액수가 제한돼 있지 않고 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해 액수나 비율을 결정하는 데 관여할 여지조차 없다”며 현재 유류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유류분 제도 도입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가족의 재산형성 과정이나 상속의 양태가 달라졌다는 점도 위헌법률심판 제청 이유로 거론됐다. 가족 구성원이 공동의 노력으로 한 집안의 재산을 일궜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일반적으로 자녀, 부모, 형제자매가 피상속인의 재산 형성과 유지에 기여한다고 볼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권 부장판사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과거에는 양성평등 차원에서 유류분의 합리성을 일부 인정할 수도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전근대적 가족제도가 해체됐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자녀 수도 현저히 줄어 지금과 같은 유류분 제도로 자녀들 사이의 양성평등이 보호되는 측면은 아주 미미하다”고 했다. 또 “유류분 제도는 결국 국민의 재산권을 법률로 제한하는 것이어서 공익적 목적을 위한 기부에도 큰 장해가 돼 공공복리를 저해하는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1960년 민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장남만이 부모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민법이 생기고 나서도 유류분 제도가 신설되기 전까지는 장남과 장남이 아닌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결혼한 딸이 서로 다른 비율로 유산을 나눠 가졌다.
헌법상의 재산권 침해 논란과 가족제도 변화 등의 이유로 그동안 유류분 제도를 손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었다. 노희범 전 헌재 헌법연구관은 “헌재가 과거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률 중엔 상속과 관련된 것이 많았다”며 “유류분 제도도 논란이 계속됐던 만큼 헌재가 위헌 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용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산 처분의 자유를 사후에까지 제한하려면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사회 환경이 바뀌면서 그런 이유가 없어졌는데도 유연성이 전혀 없는 유류분 제도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 유류분(遺留分) ::
‘유류’는 후세에 물려준다는 뜻으로,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의 유언에 따라서만 재산을 물려주면 특정 상속인(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에게 몰릴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다른 상속인들을 위해 반드시 남겨 둬야 할 상속 재산의 몫. 민법은 특정 상속인의 상속으로 유류분이 부족하게 되면 유류분 권리자가 부족분에 대한 반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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