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때 불평등은 더욱 깊어진다.”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중
대학생 때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다. 유럽은 처음이었는데 걱정과 다르게 무탈하게 잘 다녀왔다. 다만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인종차별 경험은 내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물론 주변 사례를 들어보면 내 경우는 심한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 같기는 하나, 어쨌든 밤거리를 걷다 모르는 사람에게 욕설을 듣는 것이 흔히 겪는 일은 아니니 말이다. 특히나 “망할 중국인 썩 꺼져!” 같은 말들. 나는 그가 왜 홀로 조용히 걷던 나를 상대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날따라 기분이 안 좋았을지 모르고, 그에게 중국을 싫어할 만한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딱히 상처받을 이유도 없었다. 나는 중국인도 아니고, 모든 유럽인이 그와 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다만 한국이 아닌 곳에서라면 나의 개별성은 언제든 지워지고 ‘중국인’ 혹은 ‘아시아인’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 단지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적이고 아픈 경험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계기로 중국에 대한 혐오가 점차 확산되는 모양새다. 중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대림동 지역의 위생 문화가 엉망이라는 기사도 나온다. 그들은 그저 한국에 살고 있을 뿐 중국에 다녀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물론 사람들은 안전에 대한 염려와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하지만, 바이러스를 염려하고 예방하는 것과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것은 아주 다른 문제다. 그들을 볼 때마다 과거 나에게 돌을 던지며 욕설을 하던 그때의 그가 생각난다. 그에게도 그 나름의 이유는 분명 있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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