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였을까. 망망대해를 건너던 한 무리의 비둘기가 섬을 발견했다. 바다를 건너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라 섬은 반가운 휴게소. 내려앉고 보니 그냥 섬이 아니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포식자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었고 먹을 건 많았다. 낙원이 여기 있는데 어딜 간단 말인가. 녀석들은 눌러앉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1507년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하기 위해 대서양을 헤매던 포르투갈인들이 물과 음식을 얻기 위해 섬에 상륙했다.
무인도에는 처음 보는 이상한 녀석들이 있었다. 14kg이나 되는 커다란 새들이 ‘쟤들은 뭐지?’ 하는 눈길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크다는 칠면조가 6, 7kg이니 이 정도면 엄청난 덩치다). 오랜 시간 자신들을 위협한 존재가 없어 도망갈 줄 몰랐던 것이다. 가서 잡으면 되는, 말 그대로 ‘이게 웬 떡’이었다.
녀석들은 더 이상 비둘기가 아니었다. 날고 뛸 필요가 없어 날개는 간신히 붙어있을 정도로 작았고 몸은 엄청나게 컸다.
다행히 맛이 그리 좋지 않아 남획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근처를 지나는 선원들에겐 요긴하고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어느 순간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서양의 작은 섬 모리셔스에 살았던 도도(dodo)의 이야기다. 네덜란드어로 ‘바보, 멍청이, 게으른’이라는 뜻의 이름이 생긴 이유다. 겁을 좀 남겨두었더라면 그런 대로 괜찮았을 텐데, 무엇보다 겁을 내야 할 때 내지 않았기에 박물관의 박제로만 남아있게 되었다.
우리는 겁이나 두려움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반대다. 겁은 다가오는 위기를 경고하고 신속하게 대비하게 하는 생존 필수 본능이다. 거의 모든 생명체가 이 본능을 갖고 있는 이유다. 막대기를 보고 뱀이다 싶어 일단 피하는 게 착각이더라도 설마 하다 물리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무조건 겁부터 먹는 것만큼 좋지 않은 게 겁이 없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도 겁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겁쟁이라고 하지 않는다. 누가 자신을 그렇다고 하면 화를 낸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나 본 탁월한 리더들은 달랐다. 자신을 겁쟁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깊은 대화에 이르면 거의 언제나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다. 왜 그럴까. 그들은 겁을 내는 방식이 달랐다. 사람들은 보통 막연한 대상에 막연하게 겁을 낸다. 막연하니 어찌할 줄 모른다. 탁월한 이들은 막연함을 뚫고 들어가 구체적인 겁을 낸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이건 뭘까,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이렇게 말이다. 당연히 좀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성공은 이 결과일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떨고 있다. 다들 미리 겁을 좀 냈더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 가득한 삶을 사는 히말라야에서는 “두려움을 남겨두어야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 거기에서만 필요한 말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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