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핼러윈 파티에서 처음 만난 두 소꿉친구. 한 명은 대학으로 떠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다른 한 명은 고향에 남아 그와의 우정을 추억하다 생을 마감한다. 7세 꼬마 연기부터 장례식에서 친구의 송덕문을 읊는 장면까지 연기는 딱 배우 2명. 대역도, 주변 인물도 없다. 국내 초연 10주년을 맞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는 두 배우가 생애주기에 맞춰 각 인물의 우정과 인생을 노래한다. ‘다 큰’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아동 연기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무대 어딘가 텅 빈 듯해도 관객을 무대로 더 깊게 빨아들이는 2인극이 인기몰이 중이다.
2명이 주고받는 연기만으로 극을 채우기에 배우 의존도가 매우 높다. 서사가 비교적 단조롭고 웅장한 화음이나 군무, 다른 등장인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배우들에게는 큰 도전이다. 자칫 빈약해 보일 수 있는 무대를 진정성 있는 연기로 꽉 채우는 게 관건이다.
2인극의 가장 큰 매력은 배우의 다양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약 100분간 무대 등퇴장이 거의 없다. 1인 다역의 경우 관객은 배우의 색다른 변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화가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의 이야기를 그렸다. 제작사 HJ컬쳐 한승원 대표는 “배우들이 무대 위 숨을 곳도 없고,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연기와 영상 연출, 노래로 여백을 채웠다”고 설명했다.
공연 회차마다 달라지는 배우 간의 ‘케미(조화)’도 2인극이 사랑받는 요인이다. 같은 배역이라도 배우가 어떤 상대역을 만나느냐에 따라 극은 다른 매력을 뿜어낸다. 현재 서울 공연 중이거나 개막을 앞둔 2인극 네 작품에서 배역별 캐스팅 배우는 약 5명. ‘마마, 돈크라이’에서는 배역 ‘프로페서V’와 ‘드라큘라 백작’에 7명, 8명씩 모두 15명의 남자 배우가 출연한다. 배우 조합만 수십 가지다.
다른 작품들이 주로 남성 배우 짝으로 이뤄진다면 다음 달 국내 초연하는 뮤지컬 ‘데미안’에서는 배역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성별을 두지 않고 남녀 배우 6명이 공연마다 배역을 바꾼다. 제작진은 “어느 때보다 배우들이 캐릭터 분석에 열을 올린다. 성별, 역할 구분에서 자유로운 배우들의 상상력으로 극을 채우는 도전적 작품”이라고 말했다.
2인극은 위험 요소도 있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배우의 다양한 변신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무대 위 모든 상황을 2명이 끌고 가기에 단조롭고 빈약해 보일 수 있다”며 “탄탄한 전개와 표현력, 무대 연출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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