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칼럼을 쓰고 1월 한 달간 고기, 생선, 유제품, 계란을 먹지 않는 ‘비건’에 도전했다. 이왕 하는 거 몸에 안 좋다는 밀가루와 카페인도 끊어보기로 했다. 비건 입문서라 불리는 김한민 씨의 ‘아무튼, 비건’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비건은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좋다.’ 일단 무절제한 생활을 하기 힘들다. 야식으로 치킨 시키던 습관, 배달앱으로 햄버거 1인분 주문하던 습관이 사라졌다. 그 대신 요리를 시작했다. 마라탕, 잣죽, 들깨 미역국, 감자전, 후무스……. 쌀밥만 고집하던 입맛은 현미밥으로 바뀌었고, 매 끼 쌈 채소를 곁들여 먹게 되었다. ‘시발 비용’(‘스트레스를 받아 지출하는 비용’이라는 뜻의 신조어)도 줄었다. 늘 동남아 최저가 항공에 목맸다. 서울에서 풀리지 않는 피로를 따뜻하고 물가 싼 여행지에서 풀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으로 차려 먹는 정갈한 식사가 생기고, 건강한 삶과 운동에 관심이 많아지니 일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하지만 매번 좋을 순 없었다. 다음은 실패했던 날의 일기다. ‘오늘은 도저히 못 참고 라테를 마셨다. 커피 끊은 지 18일 만. 그리고 지금 새벽 6시인데 아직 잠이 안 온다. 내 몸은 어떻게 그 많은 카페인을 견뎠지?’ 커피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마시니 느낌이 달랐다.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적정 비율로 섞은 이 액체는 매력적인 맛이었지만 그 자체로 천국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일상에서, 매 순간 흥분될 수는 없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5000원에 취할 수 있는 어떤 느낌을 너무나 사랑했던 게 아닐까?
커피뿐만이 아니다. 서울에선 비건 하겠다고 노래를 불렀건만, 제주도 몸국 앞에서, 방어회 앞에서 실패했다. 비건 중에도 플렉시테리언(채식을 기본으로 이따금 생선, 조류와 육류까지도 먹는 느슨한 채식)도 있으니 그럴 수 있다 타협하기도 잠시.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네가 비건 한다는 얘기를 듣고 ‘동물해방’을 읽는 중이야.” ‘선언’이 가지는 말의 감옥에 대해 생각했다.
다시 고기 이야기로 돌아가서, 나는 아직까지 야채보다 생선, 고기의 맛을 더 잘 아는 상태다. 무엇보다 ‘견딘다’는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즉흥적 인간이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눈앞의 것을 참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참는 게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하는 거고, 그로 인한 기쁨을 확실히 느낀다면? 그건 더 이상 참는 게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예는 세상에 너무나 많다. 누워 있는 것보다 운동하는 것이 더 고통이지만, 운동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면 기꺼이 뛰쳐나가 그 기쁨을 누린다. 나도 채식의 기쁨을 누려볼 수 있을까? 그것이 삶의 다른 테마, 이를테면 사랑으로도 확장될 수 있을까? 그날을 기다리며, 2월에도 계속해 본다. 비건 지향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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