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출병사’를 번역 출간한 김연옥 육군사관학교 교수(42·사진)는 동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간도출병사를 읽으면 일본 군부가 외무성과 ‘투 트랙’으로 움직이면서 출병 계획을 입안한 것이 드러난다”면서 “간도학살 역시 군부가 단독 행동으로 현지에서 벌인 게 아니라 일본 정부 차원에서 결정하고 자행한 학살”이라고 말했다.
간도출병사는 1920년 청산리전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작성돼 당시의 실시간 전황(戰況)을 전해주는 1급 자료다. ‘간도출병사’에 기록된 비밀작전 지령을 보면 일본군이 애초부터 한국인 마을을 초토화하려 했다는 걸 시사하는 명령이 드러나 있다. 이들의 토벌 목표는 이른바 ‘불령선인’뿐 아니라 ‘가담하는 세력’ ‘반대되는 자’까지 포함해 뿌리를 뽑는 것이었다.
일례로 자료에 담긴 ‘군 참모본부 작전명령 57호’는 “1. 조선군사령관은 …혼춘 및 간도지방에서 불령선인 및 마적과 그에 가담하는 세력을 초토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육군성 송달 ‘육밀(陸密)’ 제218호도 “불령선인의 무리들을 단순히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불령단으로 보지 말 것. …반대되는 자에 대해서는 철저히 타격을 가해 제국이 받게 될 수도 있는 화근을 근절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명령했다.
일본군은 민간인을 학살했으면서도 독립군에 큰 타격을 가하는 데 실패했다. 간도출병사는 “여러 요인에 의해 그들에게 섬멸적 타격을 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김 교수는 “독립군이 일본군 대부대를 어떻게 잘 피하면서 신출귀몰 했는지를 드러내는 점 역시 읽는 묘미”라고 말했다. 간도출병사가 청산리전투 당시 일본군 사망자를 11명으로 기록한 것에 대해서는 “일제 측이 사상자 자료를 누락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간도출병사’는 실제 적지 않은 피해가 생긴 봉오동전투의 일본군 사상자 역시 ‘약간 명’으로 쓰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일본군은 ‘출병’ 당시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을 벌이는 불법성을 희석하고 민간인 학살의 만행을 가리기 위해 일종의 방패막이로 형식적으로나마 중국 측의 ‘양해’를 얻었다”면서 “일본군이 중국과의 공동 토벌이라는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애쓴 협상 과정이 간도출병사에 분명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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