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구원 현장 조사
30년 넘게 운영-2대 이상 전통 계승, 비싼 임대료 감당 못해 폐업 고려
업주들 “시 차원 지속적 관심” 호소… 서울시 “연계 가능한 사업 검토”
서울 서대문구 연희사진관은 1951년 ‘연세사진관’이란 간판으로 처음 문을 연 뒤 아들과 손자까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1998년 5월 이화여대 앞으로 이전해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이 가게는 2018년 서울시가 ‘오래가게’로 선정했다. 사진관을 찾는 고객은 주로 취업이나 여권·운전면허증 등에 사용할 사진을 찍는 이들로 8∼10월이 성수기다. 하지만 최근 채용기업들이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적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늘리며 고객의 80%가량이 감소했다고 한다. 4명이던 종업원도 모두 내보내야 했다.
서울 종로구의 납청놋전은 국가무형문화재 77호 보유자인 장인 이봉주 씨와 아들 이형근 씨가 방짜유기(놋그릇)를 제작해 판매한다. 인사동에서 30년 넘게 놋그릇을 직접 제작해 팔고 있다. 납청놋전은 원래 인사동길에서 장사를 해왔으나 최근 건물주가 바뀌며 임대료가 크게 올라 골목 안쪽으로 옮겼다. 그만큼 접근성이 떨어졌고, 인사동을 구경하다 자연스럽게 찾아오던 외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었다.
서울연구원은 지난달 오래가게 중 업종별 10곳을 방문하는 등 현장 조사를 했다고 3일 밝혔다. 서울시는 2017년 6월 종로·을지로 일대 39개 가게를 오래가게로 선정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서북권 26곳, 지난해 서남권 22곳 등 총 87곳의 오래가게를 지정했다.
오래가게는 ‘오래된 가게’라는 뜻이다. 한자리에서 골목을 지키며 영업해왔다는 뜻의 한자어 ‘노포(老鋪)’를 대신할 이름으로 시민 공모를 통해 정했다. 수천 곳의 추천 가게 중 30년 이상 운영하거나 2대 이상 전통을 계승한 곳 등을 선정해 지정했다. 뉴트로(새로운 복고) 유행을 타고 많은 관심이 쏠렸다.
조사 결과 오래가게들은 업종과 지역에 따라 영업환경이 달라졌다. 대를 이은 가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이어온 곳도 있었지만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을 고려하는 곳도 있었다. 상당수는 오래가게 지정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했다.
2017년 오래가게로 지정된 종로구의 A떡집 관계자는 “오랫동안 단골을 상대로 장사해왔기 때문에 공공의 지원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B공방 관계자는 “외부인이 건물을 사들이면서 최근 임대료가 한계치까지 올랐다”며 “임대료 조율 등 실질적인 도움이 있으면 한곳에서 오랜 기간 장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 머물렀던 터전을 옮기는 가게도 있다. 2018년 오래가게로 지정됐던 태광문짝은 임대료 부담이 커지자 지난해 11월 경기 광주시로 가게를 옮겼다.
최봉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업종·지역에 따라 가게마다 매출 등 상황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오래가게로 지정된 뒤 민관의 지속적인 관심을 희망했다”며 “관광과 연계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많았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올해 동북권, 내년 동남권에서 오래가게를 선정한 뒤 추가적으로 연계 가능한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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