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구 강일동 가래여울마을
상수원-군사구역 묶여 개발 비껴나… 31가구 대부분 연탄-석유로 생활
서울시, 뒤늦게 배관 설치 착수
주민들 “이런 날이 올 줄은…” 감격
“내 평생 도시가스를 써보는 날이 오긴 왔네요.”
4일 오후 서울 강동구 강일동 가래여울마을에서 만난 주민 송인숙 씨(64·여)는 도시가스 공급 시설이 설치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송 씨는 1983년 결혼하면서 이 마을에 들어왔고 이후 30여 년간 하루 연탄 9장으로 겨울 추위를 버텼다. 송 씨는 “보일러와 가스레인지를 새로 사야 해 부담은 있지만 도시가스 설치에 대한 반가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가래여울마을에는 지난달부터 도시가스가 공급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도시가스 보급률은 98% 이상이지만 이 마을은 도시가스 배관이 깔려 있지 않았다. 상수원보호구역과 군사시설보호구역 등으로 개발이 제한돼 인구 유입이 적었고 경제성이 낮아 오랜 기간 도시가스 배관이 설치되지 않았다. 노후건물 밀집지역 등 경제성이 낮은 지역에선 사용자가 배관 설치비의 일부를 분담해야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도시가스 미공급 지역 보급 확대 계획’에 따라 가래여울마을을 대상지역에 포함시켰다.
그동안 주민들은 석유, 연탄, 액화석유가스(LPG) 등을 사용해 난방과 취사를 해결했다. 골목 담벼락에는 수백 장의 연탄재가 쌓여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건물은 대부분 건축 50년이 넘은 단층 기와집이다. 지붕은 새로 기와를 얹어 깔끔한 모습이었지만 녹슨 철제 대문과 금이 간 벽 등이 보였다.
이 마을은 남평 문씨의 집성촌이다. 전체 31가구 중 현재 여섯 가구의 가구주가 남평 문씨다. 다른 성씨를 가진 주민들도 대부분 이들과 친인척 관계를 형성한다. 마을은 조선 인조 당시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1559∼1636)이 이곳에 터를 잡으며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가래나무가 많고 한강 여울가에 위치했다는 뜻에서 ‘가래여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남평 문씨가 이곳을 터전으로 삼은 것은 250년 전쯤이다.
1982년 고덕지구가 개발되면서 가래여울마을 주민 상당수는 경기 광주시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서울의 여러 집성촌이 도시개발 등으로 사라졌지만 가래여울마을은 어렵게 집성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남쪽으로 불과 500m 정도 떨어진 곳에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이 진행되고 있다. 낡은 단독주택, 비닐하우스 등이 남은 가래여울마을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이 마을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1986년 마을 남쪽에 올림픽대로가 들어서기 전까지 가래여울마을의 백사장은 뚝섬유원지, 광나루유원지 등과 함께 서울 동부의 3대 유원지로 꼽혔다. 가까이 조정경기 연습장도 있어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엔 조정 선수들이 이곳에서 훈련했다.
현재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70대와 80대 등 고령층으로 언제까지 집성촌이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문동주 가래여울마을 통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도시가스 공급이 마을 발전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도시에서 보기 드문 집성촌으로 남아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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