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확산]환자동선 공개 수위-시점 제각각
일각 “질본 제공정보 너무 부실”… 지자체가 나서 괴소문 재우기도
질본, 명확한 공개 기준 없어… 정부 “지자체 공개말라” 지침에도
서울시는 “세부적 동선 알리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자 4명이 추가된 6일 서울 송파구에서는 갑자기 일대 초등학교가 휴업을 하는 등 소동이 일었다. 사람들은 정확한 정보를 알 길이 없어 온종일 가짜뉴스에 시달렸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동선 공개 정도는 모두 제각각이라 시민들의 불만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 지역마다 제각각인 동선 공개
중국인 12번 환자(48·남)는 지난달 19일 한국에 들어와 열흘 넘게 수도권과 지방을 돌아다녔다. 이 환자가 영화를 봤다는 소문이 퍼지자 어느 영화관이냐는 문의가 폭주했다. 그러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12번 환자가 방문한 영화관 정보는 물론 좌석과 세부 동선까지 공개했다.
17번 환자(38·남)의 동선은 확진 사실이 알려진 5일 곧바로 자세히 공개됐다. 그가 경기 구리시 거주자임이 밝혀지면서 안승남 구리시장이 바로 자신의 SNS에 상세 동선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보건소가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이동 경로는 물론 일자별 이동 수단까지 자세히 담았다. 하지만 이 환자가 설 연휴(24, 25일) 다녀간 대구에서는 다른 상황이 벌어졌다. 시는 환자의 동선을 구(區) 단위만 공개했다. 처음 들른 곳은 수성구 본가, 다음 날 찾은 곳은 북구 처가라는 식이었다. 오히려 해당 지역민들의 불안감만 커졌다.
○ 공개 기준 뭐길래
지역마다, 환자마다 동선 공개가 제각각인 것은 정부가 명확한 기준과 매뉴얼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34조의 2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감염병 환자의 이동 경로, 이동 수단, 접촉자 등을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기준에 따라 어느 정도 범위까지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행령이나 세부 지침은 없다. 질병관리본부는 ‘증상 발현 하루 전 동선부터 공개하고 나머지는 역학 조사관이 판단한다’는 두루뭉술한 기준만 갖고 있다.
공개 주체에 대한 해석도 엉망이다. 법령에 따르면 공개 주체는 보건복지부 장관. 하지만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를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령상 복지부 장관에게 공개 ‘의무’가 있지만 지자체장이 공개할 수 없다는 규정은 없다. 그래서 일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확인한 동선을 방역 정보와 함께 공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준이 없다 보니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공개하는 정보의 양도 천차만별이다. 질본의 정보가 너무 부실하다 보니 지자체들이 정보를 공개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16번 환자가 발생한 광주시의 경우 질본에 “지역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데 증상 발현 전 동선을 공개해도 되냐”고 문의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광주시가 자체적으로 환자의 진술과 휴대전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확인한 끝에 “각종 괴소문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수습하기도 했다. ○ 공개 기준과 창구 통일해야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인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은 6일 행안부와 각 지자체에 독자적인 동선 공개 금지 지침을 안내하고 협조를 강력히 촉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건 당국이 어떻게 동선 공개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의 방침 발표 직후에 지자체가 동선 공개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23번째 확진자가 나온 서울 서대문구는 김 차관의 브리핑 이후 ‘확진자가 2일 관내 도시형 민박시설에 들렀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서울시는 한 발 더 나아가 다중이용시설 중심의 세부적인 동선을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낸 전병율 차의과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보건 위기 상황에서 중앙과 지역의 정보 공개에 손발이 맞지 않으면 조사에 혼선을 빚거나 과잉 공포를 양산할 수 있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창구를 통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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