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경기 수원의 한 아파트 무순위 청약, 일명 ‘줍줍’에 쏠린 관심은 정부의 각종 규제에도 부동산 불패 심리가 얼마나 건재한지 보여줬다.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무순위 청약에는 접속자들이 몰리며 홈페이지가 하루 종일 먹통이 됐다. ‘접속 자체가 로또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접수가 이뤄지지 않자 건설사는 마감시간을 오후 4시에서 7시로 연장했다. 미계약 42채를 모집하는 데 몰린 사람은 6만7965명. 접속만 제대로 됐어도 평균 1618 대 1의 경쟁률은 훌쩍 뛰어넘었을 것이다.
최근 부동산 관련 단톡방과 카페에는 이런 무순위 청약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무순위 청약이란 일반분양 계약 포기자나 청약 당첨 부적격자가 발생해 남은 물량을 당첨자에게 무작위 추첨으로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19세 이상은 청약통장이 없어도 건설사 홈페이지에서 평형과 타입을 선택하면 청약이 가능하다. 로또보다 경쟁률은 훨씬 낮은데 당첨되면 수억 원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으니 신종 로또로 불리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지인에게 한 번쯤 운을 시험해보는 용도로 무순위 청약을 권하기도 한다.
어쩌다 아파트 청약이 운을 시험하는 로또가 됐을까. 신축 아파트는 점점 한정판이 되어 가는데, 그걸 시세보다 착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 청약 아니면 경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매보다 문턱이 낮은 청약시장이 가점제 위주로 개편되며 청약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가점에서 불리한 젊은층은 좁은 틈을 비집고 우회로를 찾기 시작했다. 무순위 청약, 보류지 물량 등 몇 년 전이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틈새시장에 투자수요가 몰리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아파트 투자에 쏠린 편식현상에서 찾는다. 2015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상승장에서 많은 사람이 아파트 투자로 쏠쏠한 수익을 거뒀다. 단지 나보다 먼저 아파트 갭투자에 뛰어들었다는 이유로 옆자리 동료가 근로소득을 뛰어넘는 투자수익을 거두는 것을 보며 너도나도 아파트 매입에 뛰어들었다. 여기에 정부가 규제책을 쏟아내도 서울 아파트는 결국 우상향한다는 학습효과까지 더해지며 서울 역세권 신축아파트는 가장 손쉬운 자산 불리기 수단으로 굳어지고 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복부인’이란 용어를 탄생시켰던 1970년대 말 아파트 붐은 평범한 가정주부까지 투자에 뛰어들게 할 만큼 뜨거웠다. 하지만 투기규제지역 지정 및 거래허가제를 도입한 8·8부동산규제 한 번에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지금은 다르다. 단톡방과 카페를 통해 전문가의 투자 전망과 임장 정보 등이 빛의 속도로 공유 및 전파되며 전 국민의 ‘부동산 머리’는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 정부가 수차례 규제의 방망이를 휘둘러도 아파트 가격은 자꾸만 튀어 오르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두더지게임으로 변해가고 있다. 서울이 규제 대상이 되자, 비(非)규제지역으로 투자수요가 쏠리고, 9억 원 이상 대출을 규제하자 9억 원 미만 아파트가 오르는 식이다. 그때그때 망치로만 때려잡는 두더지게임으로는 절대 튀어 오르는 두더지를 잡을 수 없다. 두더지가 왜 자꾸 튀어나오는지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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