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일상의 고됨을 내뱉고 아름다움을 다시 채우는 일.’ 이 책의 목차 열다섯 줄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아름다운 하이쿠(俳句) 연작이다. 영국 BBC라디오3에서 방송된 ‘몸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열다섯 명이 각각 눈 코 갑상샘 맹장 같은 신체기관 중 하나를 선택해 수필로 풀어냈다.
각자 위치에서 매일 맹렬하게 활동하는 지극히 생물학적인 기관들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것이 인상적이다. 소설과 시, 오페라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며 다른 경험을 해온 작가들의 개성이 오롯이 담겼다. 열다섯 작가 중 가장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시인이자 장의사인 토머스 린치. 죽음을 직업으로 삼는 그는 인체기관 중 자궁을 선택했다. 인간 존재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이자, 자궁(womb·움)과 무덤(tomb·툼)으로 우리 인생의 수미상응을 이루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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