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직언에 귀를 열어라[MondayDBR]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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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잘못된 지시를 내렸을 때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요즘도 회사에서 아래 직원이 조직의 리더인 최고경영자(CEO)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왕권이 강력했던 조선시대에 왕이 나라를 잘못 다스리고 있다고 신하가 대놓고 말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1611년(광해군 3년)에 조선에서 신하가 왕을 시쳇말로 ‘저격’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해는 과거 최종 시험인 ‘전시(殿試)’가 열렸다. 광해군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안정시키려면 당면해 있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좋은 인재를 등용하고 국론 분열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 공납제도를 개선해 백성의 부담을 경감시킬 방안, 토지제도를 정비할 방안, 호적과 지도의 정리 방안 등 4가지 현안에 대한 대책을 질문한다. 그런데 임숙영(任叔英·1576∼1623)이라는 선비는 광해군이 언급한 일들이 시급하기는 하지만 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될 일이라며 “지금 전하께서는 나라의 진짜 큰 우환과 조정의 병폐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으셨으니 신은 전하의 뜻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애오라지 덮어두기만 하고 의논하지 않으신단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사실 임숙영의 행동은 단순히 과거시험 낙방을 넘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는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꼭 지적하고자 했던 ‘나라의 진짜 큰 우환과 조정의 병폐’는 무엇이었을까? 임숙영은 임금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로 ①중궁(中宮)의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은 것 ②언로(言路)가 열리지 않은 것 ③공정한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 것 ④국력이 쇠퇴한 것 등 4가지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 4가지 문제는 모두 임금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우선 ‘중궁의 기강과 법도가 엄하지 않은 것’에서 ‘중궁’은 왕비인 중전을 뜻하는 단어지만 여기서는 중전뿐 아니라 왕의 후궁들, 즉 내명부(內命婦) 전체를 가리킨다. 광해군 당시 후궁들이 왕의 총애를 믿고 사사로운 청탁을 하는 등 국정에 자주 개입했는데 내명부의 기강을 세워 이를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요즘에도 반복돼 나타나는 문제다.

다음으로 언로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은 임금에게 말이 전달되는 통로가 막혔다는 뜻이다. 임숙영은 광해군에게 바른말을 한 간관(諫官)이 처벌받은 것을 거론하며 이 때문에 직언하는 것이 금기가 되고 아부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고 비판했다.

다음으로 공정한 도리는 인사(人事) 문제에 관한 것이다. 광해군 아래에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재산이 많은 사람이 출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권력자들의 일가붙이, 권세가에게 빌붙은 사람들이 벼슬을 독점하는 등 인재의 선발과 등용, 인사 발령과 고과평가 등 원칙이 흔들렸다. 나라의 발전과 백성의 안녕을 위해 무엇보다도 공정하게 운영돼야 할 관직이 사사로움에 물들어 버렸으니, 이는 모두 왕의 잘못이라는 게 임숙영의 주장이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국력의 쇠퇴는 위기의식을 가지라는 말이다. 일찍이 공자는 ‘임사이구(臨事而懼)’, 일에 임할 때는 두려운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 혹시나 부족한 점은 없는지, 잘못 판단한 부분은 없는지, 예상되는 리스크에 철저히 대비했는지 면밀하게 살피라는 것이다. 임숙영은 지금의 왕과 신하들은 마치 태평성대를 만난 듯 나태하고 겉으로 꾸미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며 ‘난리가 일어나기 전 위태로운 시국’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국정을 일신하지 않으면 정말로 곧 난리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숙영이 지적한 ‘나라의 진짜 큰 우환과 조정의 병폐’ 4가지는 결국 최고 리더로서 왕의 책임을 환기한 것이다. 현대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조직이 위기를 겪고 있다면, 그 사안 자체를 해소하려는 노력과 함께 조직의 리더십이 과연 건강하게 행사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혹시 리더가 오만하게 자기 생각만 고집하고 있지는 않은지, 직언에는 귀를 닫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만 곁에 두고 있지는 않은지를 반성해야 한다. 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조직 경영에 사사로이 개입하고 있지는 않은지, 능력이 아니라 정실 인사가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지, 현실에 안주해 문제점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진단해야 한다.

이 원고는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90호에 실린 ‘전하의 잘못을 간하는 사람을 존중하셔야’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akademie@skku.edu
#조직의 위기#리더십#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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