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구 안국선원은 찾을 때마다 놀라움을 안겨준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이든 관계없이 기도와 참선의 열기가 뜨겁다. 2018년 이 선원의 불자들과 인도 성지 순례를 떠났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은 부처의 흔적이 있는 곳이면 가부좌를 틀고 참선에 들어 몇 시간씩 자리를 뜨지 않았다. 도심에 참선수행의 길을 연 안국선원이 지난해 10월 개원 30주년을 맞았다. 최근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68)을 만났다.
―벌써 30주년이 지났습니다.
“30년, 굉장히 빨리 지나갔습니다. 저나 신도들이나 모두 열심히 산 것 같습니다. 30주년이라고 큰 행사를 갖는 대신 조용하게 보냈습니다. 앞으로 한국 불교 수행법인 간화선(看話禪)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7월 스페인에서 참선 수행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현지에 숭산 스님(1927∼2004)을 따르던 그룹들이 있습니다. 간화선을 올바로 접목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것도 교류하려고 해요. 우리 불교를 세계에 알린 숭산 스님의 뜻을 잇는 노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서구에서 유행하는 명상인 젠(zen)은 우리 간화선과 차이가 있지 않나요.
“명상을 해도 선(禪)을 안할 수는 없습니다. 명상도 중요하지만 선과 연결해 새로운 눈을 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말이 아니라 부처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수불 스님은 “국내 선원 일은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갈 것이니 숭산 스님이 어렵게 뿌린 우리 불교 세계화의 씨앗을 잘 키우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리모델링 중인 LA 안국선원과 내년 완공하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남국정사가 디딤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이가 적지 않습니다.
“긍정과 부정의 관점이 있는데 사람들이 조금 더 냉철해졌으면 좋겠어요.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맑은 물은 흘러갑니다. 우리는 결코 희망이라는 화두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과거보다 말씀이 희망적으로 느껴지는데요.
“과거에 비해 지금 우리는 분명 더 잘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해결책 없는 불평불만으로 우리 모두에게 소중한 희망의 불을 꺼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됩니다. 세상에는 부도덕, 비도덕이 여전하지만 그럴수록 내일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정치권을 포함해 갈등이 심합니다.
“남 탓이야말로 무기력의 극치입니다. 미래의 희망을 저버리는 일이죠. 남 탓의 구름에 갇혀 자신도, 자신이 가야 할 길도 잃어버리는 격입니다.” ―인공지능(AI) 등 세상의 변화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데요.
“그런 가운데서도 인간답게 살기 위한 자구책과 가치관을 세워야 합니다. 미래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눈뜸’이 있어야 합니다. 수행하면서 자기중심을 잡으면 잘잘못이 더 많이 보일 것이고 그 성찰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요즘 어떤 기도를 하시나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는 미래 설계를 안 하고 살았어요(웃음). 본래 마음의 거울이 맑지는 않았겠지만 계획과 목표, 모두 집착이고 그게 다시 수없이 쪼개져요. 결론 지어놓고 좇아가는 것은 어리석을 뿐입니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수행을 통해 계기가 열렸을 때 그것과 인연을 맺어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가르침을 줄 스승이 많은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한국도 종교든 어느 분야든 세계적 스승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스승 부재라는 목소리도 많고 불신이 팽배하죠. 하지만 뛰어난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스승들이 있을 겁니다.”
―출가자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승려가 기득권을 버려야 불교에 대한 신망과 희망이 생깁니다. 그런 분이 부족하니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 아닐까요. 저를 포함해 출가자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더욱 낮은 자세로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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