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이다. 희생자가 1500만 명 이상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생활방식과 세계사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큰 희생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18년 그 3배는 많은 생명을 앗아간 사신(死神)이 인류를 덮쳤다. 스페인독감으로 불리는 바이러스의 공격이었다. 희생자가 5000만 명이 넘는다.
의사는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세계대전으로 여러 대륙의 사람이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인플루엔자가 강력해지고, 퍼졌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도 최대 규모의 전쟁이었던 수당 전쟁 때 중국에서 들어온 역병이 퍼졌던 것 같다. 거란의 침공 때도 역병이 돌았다. 1970, 1980년대에 사람이 갑자기 피를 흘리며 죽는 괴질로 알려졌던 유행성 출혈열은 6·25전쟁 때 중공군을 따라온 쥐들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전쟁은 항상 두 가지 재앙을 몰고 온다. 기근과 전염병이다. 두 재앙은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둘이 만나서 서로 원인이 된다. 바이러스는 굶주려서 몸이 쇠약해진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다. 사람이 죽고 토지가 황폐해지면 식량 생산이 줄어 기근이 심해진다. 전쟁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래서 국가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노력도 희생 없이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쟁을 막는 최고의 수단은 외교가 아니라 국방력이다. 조선시대에 전쟁을 대비하려면 성을 쌓아야 했다. 대규모 축성일수록 여러 지역에서 장정을 징발했다. 그러면 전염병이 발생한다. 서울 천도 후 도성을 쌓고 수도의 기간시설을 세우기 위해 전국에서 인정(人丁)을 징발했더니 전염병이 돌고 전국으로 퍼졌다. 이런 이유로 축성이나 대규모 공사를 하려면 늘 반대가 따랐다. 그렇다고 축성을 중단하면 더 큰 재앙이 몰려온다. 이것이 인간사의 현실이고, 그래서 우리는 사회문제를 감정이 아닌 이성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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