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절차의 지연을 우려한다[동아광장/최재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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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 속에 사법 절차 지연 문제는 묵과돼
법원 심리 길어지고, 검경 장기미제 증가
독일 등 재판 지연 땐 국가 배상… 수사-재판 실태 개선책 마련해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지난 한 해는 사법개혁 논란이 뜨거웠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70년간 유지돼온 형사사법 절차의 근간이 바뀌는 큰 변화가 있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논란 때문에 정치권이 주 전장(戰場)이었고, 법조계는 소외되었기에 다수의 법조인이 우려하는 사법절차의 지연 문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과거에 ‘경찰은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진다’는 말이 있었다. 소설가 정을병 씨가 소설 ‘육조지’를 ‘창작과 비평’에 발표한 1974년 이후 우리나라는 이런 문제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경찰의 가혹행위는 사라졌고 우리 사법의 신속성과 효율성은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했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전 세계 190개 국가 사법 분야 평가 중 신속한 사법절차 등 ‘법적 분쟁 해결’ 부문에서 연속 1위 내지 2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 사법 시스템의 신속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사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재판 역시 부지하세월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법의 지체 현상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1심 재판의 경우 민사합의 사건의 평균 심리 기간이 2014년 8.4개월에서 2019년 상반기 10.1개월로, 소액 사건은 5.4개월에서 7개월로, 형사단독 사건은 3.8개월에서 4.7개월로 늘었다. 경찰이나 검찰에는 장기 미제 사건이 산적해 있다고 하니 수사 기간 역시 상당히 큰 폭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의 부정이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거나 ‘사법은 신선할수록 좋다’는 법언(法諺)처럼 ‘신속’이 사법의 핵심 가치 중 하나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민사소송법은 1, 2, 3심 재판 기간을 각각 5개월로 규정하고, 형사소송법은 심급별로 구속 기간을 제한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은 고소·고발 사건을 수리하면 3개월 이내에 수사를 마치고 공소 제기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소를 한 사람은 범죄로 피해를 입었기에 빨리 범죄자가 처벌받고 피해가 회복되기를 바란다.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은 수사가 언제 시작될지, 어떻게 끝날지 예측되지 않는 불안한 상황에서 큰 고통을 겪는다. 진범이면 응보라고 생각하겠지만, 무고한 경우는 청천벽력의 날벼락이다. 수사와 재판 기간이 법에 정해진 대로 지켜진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문제는 이런 법률 규정을 훈시 규정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는 현실이다.

독일은 재판 지연에 국가의 손해 배상 의무를 인정하고 연 1000유로까지 배상하도록 했다. 일본은 2003년 ‘재판의 신속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재판의 신속이 국가의 책무(責務)임을 선언하고, 최고재판소가 재판 장기화 원인 및 필요 사항을 조사·분석한 뒤 그 결과를 2년마다 공표하도록 했다.

우리 대법원은 2006년 ‘적시 처리가 필요한 중요 사건의 선정 및 배당에 관한 예규’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처리가 지연될 경우 막대한 규모의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손실이 예상되거나 사회 전체의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염려가 있는 사건’은 중요 사건으로 선정해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배당 및 심리 절차에 특례를 규정했다.

하지만 정치적 관심 대상이 되는 사건이 급증하면서 중요 사건으로 지정되어도 재판이 장기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은 재판부 기피 신청 과정에서 6개월 가까이 공전되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은 기소 뒤 3개월 가까이 공판준비기일조차 열리지 못했다. 중요 사건이 이러니 서민들의 보통 사건은 어떻겠는가.

국민이 사법에 바라는 것은 소박하다. 피해자는 빠른 권리 구제와 피해 회복을 희망하고, 피의자와 피고인은 신속하게 억울함이 밝혀지기를 소원한다. 경찰관과 검사, 판사들이 정시에 출퇴근해서 워라밸을 누리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사법절차가 지연돼 권리 구제에 소홀하게 되면 도래하게 될 무질서와 혼란은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 수사와 재판의 지연 실태를 면밀하게 점검하고 개선 대책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변호사
#사법개혁#재판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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