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낮 12시 반경 서울 마포구 ‘돼지쌀슈퍼’. 겨우 7평 남짓한 가게는 20여 명이 몰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35년 넘게 슈퍼를 운영해온 이정식(77) 김경순 씨(73·여) 부부에게 10일은 ‘영화 같은 하루’였다. 이날 오스카(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영화 ‘기생충’을 여기서도 촬영했기 때문이다. 벽엔 ‘기생충 촬영 우리 슈퍼’라 적은 A4용지도 붙어 있었다.
가게는 진작부터 영화 팬들에게 ‘성지’로 통해 왔다. 극 초반 민혁(박서준)이 기우(최우식)에게 과외를 제안해 ‘사건이 시작된 곳’이라 불린다. 이 씨는 “최근 외국인 3명이 한국말로 또박또박 ‘캐나다에서 왔습니다. 기생충 팬입니다’라고 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 ‘기생충’이 한국 사회를 흠뻑 물들이고 있다. 특히 ‘봉준호 신드롬’은 소셜미디어 등에서 가히 폭발적이다. 촬영지를 방문한 ‘인증샷’이나 ‘한우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 등을 소개하는 글과 사진이 급속도로 쏟아졌다. 주 무대였던 저택 세트장이 있던 전북 전주시 전주영화종합촬영소엔 하루 수십 통씩 방문 요청 전화가 온다. 관계자는 “아쉽게 세트는 촬영 뒤 철거했는데도 무조건 와보겠다는 반응이 상당하다”고 했다.
‘오스카 트로피’도 관심을 끈다. 시상식 뒤 누리꾼들은 “돌잡이용품으로 인기를 끌지 않겠느냐”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도 쿠팡 등에선 ‘돌잡이용 오스카 트로피’를 팔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예전부터 있던 상품인데 갑작스레 큰 주목을 받는다. 얼떨떨할 정도”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신드롬에 편승하는 공약과 패러디가 등장했다. 영화 포스터에 얼굴을 합성하거나 기생충으로 삼행시를 지은 의원도 있었다. 한 정치인은 “봉 감독 고향 대구에 생가를 복원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는데 차가운 반응이 더 많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기생충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이란 조소가 올라왔다.
봉 감독이 다녔던 연세대도 뿌듯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연세대 관계자는 “11일 ‘아카데미 수상을 축하드린다’는 문구를 적은 현수막을 주문했다”며 “봉 감독 관련 행사를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다. 매우 행복한 고민”이라고 했다. 대학 홈페이지에도 ‘봉준호 동문, 오스카 4관왕 차지’란 알림을 재빨리 띄워뒀다.
봉 감독이 재학 시절 학교신문 ‘연세춘추’에 그렸던 네 컷 만화와 만평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인 그는 군 전역 뒤 1993년 1학기 동안 연재했다. 당시에도 사회적 이슈를 촌철살인으로 다뤄 ‘역시’란 평이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찬바람이 불던 영화관도 훈풍이 분다. 멀티플렉스 CGV는 10일 시상식 뒤 전국 상영관 가운데 30곳에서 ‘기생충’을 재상영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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