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레이스 초반 공화당과 민주당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당은 확실한 대선 주자가 없는 데다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의 개표 혼란으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반면 공화당은 사실상 대선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난주 내내 호재가 잇따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중 최고의 1주일이었다”(파이낸셜타임스)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다.
첫째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올랐다. 4일(현지 시간) 공개된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49%로 취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둘째는 탄핵안 부결(5일)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앙숙인 밋 롬니 의원을 제외한 공화당 상원의원 전원이 탄핵에 반대한 건 예상을 뛰어넘은 일이다. 2016년 대선 캠페인 전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에서 아웃사이더였지만 이제 ‘공화당이 트럼프당이 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게 됐다.
셋째는 민주당의 아이오와 코커스(3일) 개표 관리 실패다. 38세의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이 깜짝 1위를 차지하면서 민주당 대선 경선에 관심이 높아질 수 있는 기회였지만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요즘 더욱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발언과 행동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4일 국정연설이 하이라이트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78분 동안 대통령으로서의 비전보다는 대선 후보로서 지지자를 향한 발언을 쏟아냈다.
한 예로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인(alien)’이라는 표현을 10차례 사용했는데 모두 ‘불법적인(illegal)’ 또는 ‘범죄의(criminal)’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다.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지지를 보낸 백인 노동자 계층의 입장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잠식할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다. 지지층의 표심을 다시 얻기 위해 이들의 경쟁자를 적(敵)으로 규정한 것이다.
또 건강보험 문제를 언급하며 “결코 사회주의가 미국의 건강보험을 파괴하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특히 급진적 좌파로 분류되는 유력 대선 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겨냥한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주의는 국가를 파괴하지만 자유는 (국민의) 마음을 통합한다”며 이분법 구도를 명확히 했다.
AP통신은 ‘분열의 연설(state of the disunion)’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state of the union’이라고 표기하는데 이 표현을 뒤집어 국정연설을 비판한 것이다.
탄핵안이 부결된 지 사흘 만인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보복 조치’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하원의 탄핵 조사 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알렉산더 빈드먼 중령은 백악관에서 내쫓고, 고든 손들런드 주유럽연합(EU) 미국대사는 불러들이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에서 승리한 뒤 대통령직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CNN)는 평가가 나왔다.
정치인들에게 선거에서 이기는 것은 지상(至上) 과제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지지층을 넓히는 것 못지않게 기존 지지층을 탄탄하게 결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피아(彼我)를 명확하게 나누는 전략을 종종 쓰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 최강국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편 가르기 전략’을 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미국 사회에 치유하기 어려운 후유증을 남기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국가들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10일 무역협상과 관련해 “유럽과 진지하게 대화하겠다”라고 엄포를 놓은 것도 대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그의 화살이 어디를 향할지 전 세계가 불안한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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