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의 연임에 제동을 거는 중징계(문책경고) 처분을 내린 것을 놓고 금감원의 제재 권한이 적절한지 논란이 나오고 있다. 검사를 하는 금감원이 징계 수위까지 결정하는 것은 검찰이 판결까지 내리는 격이라는 것이다. 은행 증권 등 업권별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하는 기관도 달라 형평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조만간 손 회장에게 문책경고 제재를 통보할 예정이다. 문책경고를 통보받으면 3년간 금융사에 재취업할 수 없다. 다음 달 주주총회에서 손 회장이 연임을 못 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금융이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손 회장에 대한 중징계는 금감원장의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에서 결정했다. 금융당국 4명과 민간위원 5명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제재심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제재심에서 97∼98%의 경우 검사를 담당한 금감원 검사국의 징계 초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제재심의위원장을 금감원 수석부원장이 맡고 있어 금감원의 의중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법체계로 따지면 수사권, 기소권, 재판권을 모두 휘두르는 셈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측은 “금감원 제재는 행정처분이기 때문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며 “권위 있는 민간 인사들을 제재심의위원으로 위촉해 공정성을 확보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민간위원을 사실상 금감원이 결정하는 구조다. 제재심에는 총 17명의 민간위원이 있는데 이 중 제재심 대회의에 들어갈 5명은 금감원이 지명한다. 제재심 결정에 사실상 반기를 들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이의신청, 행정소송 등이 가능하지만 금융사 입장에선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금융당국과 전면전을 펼치는 것은 부담스럽다.
법률마다 중징계 권한을 결정하는 주체가 제각각이라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은행법과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중징계에 해당하는 ‘문책경고’를 금감원장이 내릴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서는 금융위원회가 권한을 갖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과 자본시장 부문별 CEO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권한이 제각각이다 보니 형평성 문제가 나온다”며 “그동안 은행 수장이 금감원 제재로 옷을 벗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에서는 관련법상 혼재된 금감원의 제재 권한을 통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0일 “금감원장의 권한을 다시 생각해 보겠다”며 금감원 제재 권한 재정립에 대한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도 “금감원과 금융위가 소통을 잘해오던 시절에는 제재로 인한 잡음이 없었다”며 “금감원의 제재 권한은 일정 부분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위가 금감원의 가장 큰 권한 중 하나인 제재 권한을 개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반민반관’ 성격인 금감원의 제재 권한을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관련법 개정도 추진됐지만 금감원의 반발에 유야무야됐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금융사 제재에 대한 법이 제각각이어서 논란이 불거진 측면이 있다”며 “금융당국이 분산된 금융회사 관련법을 서둘러 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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