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고용에 의존하는 일자리 창출… 경제 착시-안일 대응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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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1월 고용동향 발표

지난달 세종시의 한 도로변에서 정부 지원 일자리 사업에 참가해 길거리 청소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 이들은 원래 버스정류장 주변 청소만 하면 되지만 정류장 인근은 깨끗한 편이라 다른 지역까지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있다. 세종=남건우 기자 woo@donga.com
지난달 세종시의 한 도로변에서 정부 지원 일자리 사업에 참가해 길거리 청소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 이들은 원래 버스정류장 주변 청소만 하면 되지만 정류장 인근은 깨끗한 편이라 다른 지역까지 돌아다니며 쓰레기를 줍고 있다. 세종=남건우 기자 woo@donga.com
#1. “업무강도요? 사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전북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최근까지 산림재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A 씨. 그가 오전 9시 시내 사무실로 출근해 처음 한 일은 산불진화대 등 다른 일자리 사업 참가자가 출근했는지를 체크하는 것. 그 후에는 가끔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며 산불이 났는지만 확인했다.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가 오후 6시에 퇴근하면 7만 원가량의 일당을 받았다. 그는 “바쁠 건 하나도 없고 그저 다른 직원들 보조 역할만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산림재해일자리 사업에 올해 820억 원을 들여 1만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2. 7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산 우려가 커지던 시기였지만 B 씨(80)는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환승역 등을 안내하는 지하철 도우미 업무를 했다. B 씨는 “젊은 사람들도 걸리면 아프다는데 나도 전염병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면서도 “노인 일자리로 받는 27만 원과 연금 20만 원이 유일한 생활비라 불안해도 나와서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임금 대부분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직접 일자리가 늘면서 고용 상황이 좋아진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구직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와 반대로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정부가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소득이 없는 절박한 노인들에게는 이 정도의 일거리라도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결국 노인 취업자의 증가는 고령화·저성장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씁쓸한 단면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늘어난 취업자의 90%는 노인

12일 발표된 일자리 성적표는 일단 겉보기에는 매우 화려했다.

1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56만8000명이 증가하며 2014년 8월(67만 명) 이후 5년 5개월 만에 가장 많이 늘었다. 또 15∼64세 고용률도 66.7%로 1월 기준으로 통계를 작성한 1989년 이후 31년 만에 최고치다. 통계청 관계자는 “작년 초 고용지표가 부진해 기저효과가 생겼다”고 원인을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달에 늘어난 그 많은 일자리의 90%가량은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60대 이상 일자리였다. 이 연령대의 취업자는 1년 전보다 50만7000명 증가해 1982년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많이 늘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건강 문제 등을 고려해 한겨울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을 벌이지 않았다. 하지만 일자리를 찾는 노인들을 위해 올해부터는 혹한기인 1월에도 사업을 계속 이어갔고 이것이 노인 취업자의 증가로 나타났다.

그러나 경제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40대 취업자는 8만4000명 줄어 50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고, 고용률도 전 연령대를 통틀어 유일하게 하락했다. 취업 시간대별로도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56만9000명 늘어난 반면 풀타임 근로자라고 볼 수 있는 36시간 이상 취업자는 2만7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부가 임금 대부분을 지원하는 재정 지원 일자리는 2018년 이후 해마다 증가세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을 분석한 결과 2018∼2020년 3년간 총 8조38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247만 명(목표 인원 포함)을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상당수가 단순 작업으로 올해도 산과 강의 쓰레기를 줍는 사업에만 4000명이 투입된다. 지난달 지방에서 버스정류장 주변 환경미화 근로를 하다가 본보 기자와 만난 C 씨(75)는 “시간은 때워야 하고 돈을 그냥 받을 수는 없어 쓰레기를 찾아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노인 스스로 원하고 불가피한 측면도 있어”

다만 요즘 같은 불경기일수록 정부가 이런 일자리라도 만들어내는 게 저소득층의 생계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노인 빈곤이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원에서 거리환경지킴이로 일하는 D 씨(75)는 “얼마 전 부인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며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받지만 이런 일이라도 안 하면 생계가 막막할 뻔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노인 빈곤은 복지 정책을 통해 풀어야지 경제지표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 돼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부풀려진 일자리 성적표를 토대로 잘못된 진단을 내릴 수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도 11일 부처 업무보고에서 “지난해 일자리에서 반등하며 양과 질이 모두 개선됐다”고 말했는데 이를 두고 대통령의 고용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노인 일자리는 복지의 영역이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는 “60대 이상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 자체는 좋지만 문제는 시장에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며 “민간 경기가 돌아가지 않는 게 본질적인 문제인데 정부가 인식도 못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남건우 woo@donga.com·최혜령·송충현 기자
#노인일자리#일자리#1월 고용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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