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은 바이러스와 닮았다. 끊임없이 변종을 양산하는 바이러스처럼 계속 수법을 바꿔 나간다. 초기에는 여론조사, 경품당첨 등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묻는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정보기술(IT) 발전과 함께 휴대전화, 컴퓨터에 앱을 설치시켜 통째로 빼가는 식으로 진화했다.
▷이상한 메일이나 문자는 절대 열지 말라지만 최근에는 ‘한국 코로나바이러스 첫 사망자 발생’이란 제목의 동영상도 등장했다. 동영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스팸 바이러스인데 열면 휴대전화에 설치된 금융정보와 송금기능을 몽땅 빼간다고 한다. 요즘 같은 때 ‘우한 폐렴 감염자 및 접촉자 신분 정보 확인하기’라는 문자가 오면 안 열어보기도 힘들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오산이다. 2007년 아들을 납치했다는 보이스피싱에 걸려 6000만 원을 사기당한 한 지방법원장은 범인들이 들려준 “살려 달라”는 목소리를 아들로 착각했다. 주변에서 아들에게 확인 전화를 하자고 했지만 이 법원장은 “협박범들이 아들에게 전화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다”며 돈을 보냈다. 2014년 적발된 보이스피싱 일당의 총책은 6년간 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서 보이스피싱 수사를 맡았던 전직 경찰이었다. 그는 수사 노하우를 활용해 조직을 구성하고, 직접 조사했던 범죄자들을 조직원으로 편입시켰다. 드러난 조직원만 50여 명에 달했다.
▷최근 전북 순창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20대 청년 김모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검사를 사칭한 범인은 “통화를 끊으면 공무집행방해로 2년 이하 징역 및 30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받고 (도주하면) 지명 수배된다”고 협박했는데, 김 씨는 실수로 전화가 끊어진 뒤 다시 연결이 안 되자 진짜 처벌을 받을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김 씨는 대학 4년 내내 다리가 불편한 친구의 휠체어를 끌어줄 정도로 심성이 고왔다고 한다. 김 씨는 유서에서 “저는 수사를 고의로 방해한 게 아닙니다”라고 호소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는 2013년 550억 원에서 지난해 6300억 원으로 급증하고 있다. 피해자 자살 같은 극단적인 불상사가 발생해도 양형단계에서 참고될 뿐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직접적으로 묻기는 어렵다고 한다. 금융범죄인 데다 범인이 고의로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 보이스피싱 일당을 조직폭력 단체에 준해 처벌하고 있으나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걸 보면 큰 효과는 없는 듯하다. 선량한 사람들을 숙주로 삼는 기생충을 박멸하려면 보다 강력한 대응과 처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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