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식민지 경찰, 노숙인, 민병대원, 사회주의자이자 애국자, 정원사와 은둔자, 시대의 견자(見者)….
‘동물농장’ ‘1984’로 잘 알려진 조지 오웰(1903∼1950)은 여러 수식어로도 설명이 쉽지 않은 작가다. 그는 시대의 전환기마다, 전체주의의 유령이 고개를 들 때, 빅브러더(Big Brother)의 숨결이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소환되는 영원한 생명력의 작가다.
오웰의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오웰은 그가 어른이 돼서 자주 낚시하러 갔던 영국 한 강의 이름이다.
‘조지 오웰’은 오웰 70주기를 맞아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참여한 작품이다. 그의 삶을 다룬 그래픽 전기를 표방했다. 글쎄, 만화로? 편견을 갖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복잡한 인생을 담아내기는 쉽지 않은 그릇이 아닐까 싶었다. 몇 장을 넘기는 순간 역시 과장된 의욕의 먹구름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림과 그림 속 텍스트에 집중하자 먹구름에 가려져 있던 오웰의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래픽 전기 ‘조지 오웰’은 한편의 흑백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묘하게 텍스트의 매력이 그림을 압도한다. 칭찬일까 비난일까. 영화로 치면 비주얼보다 내레이션 또는 자막이 더 매력적인 셈이다. 그림을 설명하는 글 사이로 오웰의 일기와 작품 일부를 가급적 그대로 옮겼다는 타이핑체 문장이 조화를 이룬다. 이를테면 스코틀랜드 주라섬에서 ‘1984’를 집필하던 오웰의 삶을 궁핍하지만 평화로운 것으로 묘사하면서 오웰 자신의 말을 보탠다. “스페인 내전 이후, 솔직히 나는 책을 쓰고 닭을 키우고 채소를 기르는 것 말고는 대단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스페인에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하고 좌파 정당들의 내부 사정을 알고 나니 정치가 공포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이 책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작품을 기획하고 글을 담당한 피에르 크리스탱(82·사진)이다. 그는 프랑스 소르본대와 파리정치대에서 언어와 정치를 공부한 뒤 작가 번역가 음악가로 활동했다. 1967년 그가 만화가 장클로드 메지에르와 작업한 SF만화 ‘발레리안과 로렐린’ 시리즈는 43년 동안 연재되면서 ‘국민 만화’가 됐다.
크리스탱은 그림으로 만든 이 흑백 다큐의 뛰어난 ‘감독’이 됐다. 그는 오웰의 작품을 섭렵한 뒤 작가의 삶을 ‘오웰 이전의 오웰’ ‘블레어가 오웰을 창조하다’ ‘오웰은 누구인가’의 3부작으로 나눴다. 오웰 삶의 주요 장면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곳곳에 오웰의 목소리를 시의적절하게 입혔다. 크리스탱과 여러 작업을 했던 만화가 세바스티앵 베르디에를 비롯한 7명의 작가가 협업해 그렸다. 흑백으로 구성된 책 중간에 등장하는 ‘동물농장’ ‘1984’ 등 압도적 분위기의 컬러 이미지는 보너스다.
오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면 깊이는 아쉬움이다. 그래픽 전기라는 형식과 분량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자주 소환되면서도, 아직 미지의 부분이 남아 있는 오웰에 대한 흥미로운 안내서로 충분하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크리스탱은 이런 소감을 밝혔다. ‘영국의 아름다운 강들 중 하나인 오웰강의 수면이 겉으로 보기에는 잔잔하지만 깊은 곳에서는 마구 소용돌이치듯이, 어떤 수수께끼는 한 사람과 그의 작품에 영원히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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