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서 현판식… 법적 공방 12년만에 명예회복 합의
한국의 대표 건축문화유산 기대
재단법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이사장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17일 오후 1시 반 경북 경주시 천군동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에서 경주타워의 디자인 저작권자가 세계적인 건축가 고 유동룡 선생(1937∼2011)임을 선포하는 현판 제막식을 열었다.
재일동포 2세인 유 선생은 도쿄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끝까지 일본에 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명인 이타미 준(伊丹潤)은 절친했던 작곡가 길옥윤의 예명인 요시아 준에서 ‘준’을, 그가 생애 처음으로 한국에 올 때 이용했던 오사카 이타미 공항에서 ‘이타미’를 따서 지었다. 자유로운 세계적 건축가가 되자는 뜻을 담았다.
이날 행사는 유 선생과 유가족이 경주엑스포 측과 디자인 표절과 관련해 법적 공방을 벌인 지 12년 만에 이뤄졌다. 거장의 명예 회복이라는 큰 틀에 합의하고 유가족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를 비롯해 주낙영 경주시장, 장녀인 유이화 ITM건축사무소 소장, 영화 ‘이타미 준의 바다’를 제작한 정다운 감독 등이 참석해 손을 마주 잡았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예술인의 저작권 보호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지적재산을 침해하는 일을 해 매우 유감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유 선생의 명예 회복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와 지역의 전통성을 추구한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높이 82m인 경주타워는 2007년 완공됐다. 황룡사 9층탑을 투각(透刻)으로 형상화해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공모전에 출품했던 유 선생과 제자들이 자신들의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같은 해 연말부터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대법원이 2011년 7월 경주타워의 디자인 저작권이 유 선생에게 있다고 확정 판결하면서 저작권자에 대한 분쟁은 마침표를 찍었다. 유 선생은 승소 판결이 나기 한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이어진 ‘성명표시’ 소송 역시 법원이 유 선생 측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2012년 9월에는 원래 저작권자가 유 선생이란 것을 명시한 표지석을 설치했다. 이는 국내 첫 사례였다.
이번 현판식 또한 국내 처음이다. 경주엑스포 이사장인 이 지사가 지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과감하게 결단을 하면서 12년간 이어온 소송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건축계와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표절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경주타워 앞에 새롭게 자리한 현판은 가로 1.2m, 세로 2.4m 크기의 대형 철제 안내판이다. 유 선생의 건축 철학과 2005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2010년 일본 최고 권위 건축상 등의 수상 경력, 대표작 등을 담았다.
지난해 유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를 개봉한 정 감독은 “이번 현판식이 열리는 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탠 것 같다. 경주타워가 유 선생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많은 분들이 의미를 기억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은 유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타계 10주기를 맞는 내년에 특별전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고인의 작품 세계와 철학의 깊이를 되새길 수 있는 뜻깊은 행사로 마련하기 위해 구체적인 전시 방향을 유가족과 면밀히 협의할 방침이다.
주 시장은 “앞으로 경주타워는 유 선생의 상징성에 힘입어 100년, 200년 후에도 한국의 대표 건축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인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경주타워를 잘 보존하는 한편 관광문화도시 경주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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