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만 가는 오만[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8일 03시 00분


與, 비판칼럼 고발 끝내 사과 거부
오만과 독선, 상식과 통념 못 이겨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민주당만 빼고’ 칼럼의 필자는 범보수 진영으로 보기 어렵다. ‘안철수 캠프’에 이름이 올랐지만 범여권 성향의 촛불 진영에 가까워 보인다. 여당은 칼럼 필자에 대한 고발은 취하했지만 당 차원의 공식 사과는 끝내 거부했다. 야권은 물론 촛불 진영에서도 수위가 높아지는 정권 비판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언론·표현의 자유’보다 정권 보위라는 대의가 부각된 것 같다.

칼럼 고발에 대한 역풍이 거세지자 친문 진영은 여당을 엄호하기 위한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논란이 된 칼럼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필자를 선관위에 신고했다. 한때 친여 성향 인사들까지 ‘나도 고발하라’는 비판 대열에 합류하자 ‘우리가 고발해줄게’라며 맞대결을 선언했다. 겸허한 반성은커녕 조국 일가를 수사한 검찰을 향해 ‘검찰 개혁’ ‘조국 수호’를 외치며 선전포고한 것과 같은 비슷한 행태다. 상식의 문제를 적과 동지, 선악(善惡)의 프레임으로 바꿔보려는 꼼수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고, 설령 잘못이 있다고 해도 보수 세력과 비교하면 뭐가 문제냐는 지독한 오만이다.

오만은 일방통행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핵심인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범여권 ‘4+1’협의체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이 대표적이다. 국회법에 명시된 교섭단체 간 협상은 아예 실종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경기의 규칙인 선거법을 일방 처리한 전례는 없다고 한 발언은 외면됐다. 자유한국당의 비례위성정당 창당은 정치적 꼼수에 가깝다. 하지만 범여권 ‘4+1’이 일방 처리한 선거법의 틈새를 파고든 것이다. 꼼수가 꼼수를 탓하려니 민망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윤석열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1·8 검찰 인사를 시작으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의 공소장 비공개와 수사-기소 검사 분리 검토 발언은 속도전을 방불케 했다. 검찰 개혁으로 포장됐지만 하나같이 윤석열 검찰 견제에 맞춰졌다. 정작 국민은 “왜 하필 지금이냐”고 묻고 있다. 정권 초반엔 손을 놓고 있다가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정조준하고 있는 지금 검찰을 겨냥한 칼날은 수사 무력화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으로 친문 실세 등 13명이 기소됐고, 4·15총선이 끝나면 남아 있는 수사도 재개될 것이다. 추미애식 개혁이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지 못하는 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오죽하면 여당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추 장관에게 신중한 처신을 주문했을까.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역사를 한번 바꾸는 데 성공한 창조적 소수가 자신들이 성공한 방법을 모든 곳에 다 통하는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우상화하면 ‘휴브리스(hubris·오만)’”라고 경고했다. 이들이 교만해지면 추종자들에게는 복종만을 요구하며,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지적·도덕적 균형을 상실하고, 판단력도 잃어버린다고 지적했다. 지지층과 일반 국민의 괴리가 심해지는 이유다.

창조적 소수의 오만은 타인과의 공감을 가로막는다. “우리가 옳다” “우리의 판단이 진리다”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데 자신들을 겨냥한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이럴수록 범여권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촛불 동맹’은 더 흔들릴 것이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강경한 친문 지지층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적과 동지라는 날 선 대결 구도도 뚜렷해지고 있다. 여기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상식과 통념이 들어설 자리는 거의 없다. 여권이 지지층의 분위기를 외면할 순 없겠지만 휩쓸리면 오만의 덫에 갇히게 된다. 그 판단의 몫은 여권에 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더불어민주당#칼럼 고발#추미애 법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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