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성동보건소를 찾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코로나19 대응을 물은 데 대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답이다. 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 취재를 상기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단, 주어가 바뀌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잘하고 있다.
2015년 38명이 사망한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 예방법이 개정됐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의료기관 각각의 역할이 정리됐다. 감염병 환자가 역학조사와 격리조치에 협력하도록 강제됐다. 환자 동선과 진료한 병의원도 공개해야 한다. 이번에 전국적인 방역체계가 즉각 가동됐던 이유다.
메르스 학습효과는 거기까지였다. 정부의 대응은 한 템포씩 늦었다. 확진 환자 11명이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 입국자다. 대부분 지난달 24∼27일 설 연휴 직전 입국했으나 정부는 4일에야 입국을 제한했다. 우한 교민 수송은 결정을 미루다 중국 눈치 보기 논란을 자초했고, 이들을 격리할 시설을 번복해 지역의 반발을 불렀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방역이 선방하고 있다면 그건 민간의 힘이 크다.
태국 여행을 다녀온 16번 환자. 보건당국은 이 환자를 중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며 검사 대상에서 제외해 확진 판정이 늦어졌다. 그동안 광주21세기병원은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된다는 소견서를 발급했고 환자를 이송받은 전남대병원은 음압병실에 격리하고 끈질기게 검사를 요구했다.
이후 보건당국은 의사 재량에 따른 검사를 허용했다. 덕분에 숨은 환자가 드러났다. 고려대안암병원 응급실 의사가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보고 해외에 간 적도, 환자와 접촉한 적도 없는 29번 환자를 찾아낸 것이다. 하마터면 지역사회 ‘슈퍼 전파자’가 될 뻔했다.
코로나19 환자 2명(3번, 17번)을 완치시킨 명지병원은 민간병원이다. 2013년 국가지정 입원격리병상이 됐다. 감염병 환자가 입원하면 외래환자가 줄기 마련이라 민간병원은 음압병상을 기피한다. 이왕준 이사장은 13일 통화에서 “누구라도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맡았다”고 했다. 이제 감염병 치료 경쟁력을 갖게 됐고 직원들의 자부심도 크다.
전쟁터라면 야전병원인 선별진료소는 전국 548곳에 설치됐는데 절반 이상이 민간 의료기관이다.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하려는 자구책일지라도 인프라와 실력이 없으면 차릴 수 없다. 감염을 무릅쓰고 야전을 누비는 의료진은 어떠한가. 우한 교민 곁에 남은 의사, 충남 아산 격리시설에 자원한 의사, 방역복을 입고 음압병상을 지키는 간호사를 보면 절로 숙연해진다.
정작 이 이사장은 시민들에게 공을 돌렸다. 명지병원이 코로나19 환자 입원을 공지했으나 입원 환자 모두가 남았다(내원 환자는 줄었다). 환자들의 신뢰에 울컥했다고 한다. 인근 주민들은 의료진을 응원하는 편지와 함께 간식을 보내왔다. 메르스 당시 병원이 텅텅 비고, 지역주민이 외면했던 것과 상반된다.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같은 개인위생수칙 준수율도 크게 개선됐다. 아산·진천 주민과 우한 교민의 상처를 보듬은 것도 결국 성숙한 시민의식이었다. 국민 복(福)이 많은 정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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