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래미 시상식은 세계 음악인의 축제요, 전쟁터다. 특히 2005년 그래미는 전설을 남겼다. 당시 23세의 팝스타 어셔가 68세 ‘솔(soul)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1933∼2006)과 감히 한 무대에서 펼친 축하공연 말이다.
그날 어셔의 2004년 히트 곡 ‘Caught Up’과 브라운의 1970년 고전 ‘Get Up (I Feel Like Being a) Sex Machine’을 천의무봉의 리듬으로 이어 붙여 진짜 펑크(funk)를 보여준 드러머, 에런 스피어스(44)를 14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났다. 그는 백스트리트 보이스부터 레이디 가가까지 다양한 팝스타의 리듬을 책임진 베테랑 ‘리듬 머신’이다.
스피어스는 15년 전 그날을 한마디로 “가장 진땀 났던 무대”라고 회고했다.
“세계적인 음악가, 음반사업가, 프로듀서들의 ‘매의 눈’이 꽂힌 무대에서 제 연주에 맞춰 어셔와 브라운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그날의 스트레스 수준이란 상상 그 이상이었죠. 성공적으로 마친 데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 무대 이후 스피어스에게 러브콜이 쏟아졌다. 현재는 슈퍼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의 드러머로 활동 중이다. 2017년 그란데의 내한공연 때도 스피어스는 폭발적 연주를 선보였다.
“일각에선 과소평가하지만 그란데는 정말 대단한 가수이자 뛰어난 작곡가예요. 주변 사람을 챙기는 인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란데와 만난 건 행운이에요.”
스피어스는 “어린 시절, 교회에서 첫눈에 드럼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생김새와 소리 모두 꼬마 스피어스를 사로잡았다.
“데니스 체임버스, 빌리 코브햄 등 다양한 장르, 최고 연주자들의 스타일을 가리지 않고 포용해 제 스타일로 녹여냈습니다.”
요즘은 케이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13일에는 서태지 밴드의 건반주자이자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싱에도 참여한 닥스 킴을 만났다. 스피어스는 “블랙핑크,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해외에서 대단하다. 케이팝 음악이 뿜는 에너지가 좋아 기회가 된다면 꼭 참여해 보고 싶다”고 했다.
요즘 팝 음악에서 가상 악기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스피어스는 “팝 음악의 핵심 요소는 변하지 않았다. 가상 연주와 실제 연주를 합쳐 더 강력한 뭔가를 만드는 게 내 과업”이라고 했다.
스피어스는 이날 마포구 KT&G 상상마당 홍대 라이브홀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한국의 프로 드러머 지망생 200명과 만났다. 어셔부터 DJ 섀도우까지 다양한 음악가들의 곡에 맞춰 벽력같은 연주를 선보이며 지망생들의 궁금증에 답했다.
“성공만 올려다보는 일은 공허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이 순간 최대한 즐기고 있다는 느낌, 그게 가장 중요하죠. 삶을 사랑해야 음악을 더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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