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에는 여행을 떠난 동익(이선균)네 집이 빈 틈을 타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몰래 집에 들어가 술판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예상치 못한 폭우가 쏟아져 동익네 가족은 여행을 떠난 당일 밤 귀가한다. 집에 들어온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숨바꼭질을 벌인 끝에 기택의 가족은 동익의 집을 탈출한다.》
기생충의 연출팀이었던 윤영우 씨(33)는 “봉준호 감독은 동익의 집에 몰래 들어간 기택의 가족들이 어디에 신발을 벗어 놓았는지도 기억했다. 도망칠 때 어느 위치에서 신발을 신게 되는지 맞추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10번 이상 보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해도 잡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봉 감독과 영화 ‘기생충’, ‘옥자’(2017년), ‘마더’(2009년)에서 호흡을 맞췄던 제작진과 배우들은 ‘작은 돌을 세공하는 듯한’ 봉 감독의 섬세함을 그의 리더십 원천으로 꼽는다.
‘마더’에서 고등학생들이 비닐봉지에 본드를 넣고 흡입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봉 감독은 “봉지가 비어 보인다”며 샴푸를 구해 와서 넣었다고 한다. ‘마더’에서 남고생 ‘깡마’ 역을 맡았던 배우 정영기 씨(39)는 “2초 정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었고, 속이 보이지도 않는 검정 봉지였는데도 본드가 들어 있는 느낌을 살리려는 걸 보고 감탄했다. 대충이라는 게 없는 분”이라고 말했다.
로케이션(장소) 섭외에 완벽을 기하기로도 유명한 봉 감독은 ‘옥자’에서 주인공 미자(안서현)가 사는 산골 마을을 찾기 위해 9개월 넘게 전국을 뒤졌다. ‘옥자’ 조감독 조용진 씨(39)는 “스태프 8명이 2인 1조로 전국의 산간 마을 1000여 곳을 돌았다. 봉 감독이 머릿속에 그린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곳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았다”고 했다.
봉 감독은 현장에서 “왜?”라는 질문도 자주 던진다. 시나리오와 스토리보드, 촬영과 편집 장면까지 머릿속에 정해놓고 그대로 구현하는 제작 스타일로 유명하지만 배우와 스태프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 씨가 ‘마더’에서 배우 진구에게 맞아 앞니가 부러지는 장면에서 봉 감독은 비명소리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질문했다.
“짧게 ‘악!’ 하며 내지르지 않고 비명을 길게 떨며 냈더니 봉 감독님이 ‘이렇게 비명을 지른 이유가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단순히 아픈 것뿐 아니라 서럽고 억울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고 답하니 그 부분을 더 살려보자고 하셨죠. 장면마다 배우에게 질문하셨어요. 그런 감독은 봉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봉 감독은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그 끈을 놓지 않는다. ‘마더’ 개봉 이후 ‘시간 되면 오시라’는 문자 한 통에 정 씨가 출연한 연극 두 편을 모두 보러 왔다. 연극이 끝난 뒤 술을 사주며 “무대 위에서 너의 표정이 난 참 좋다. 자신감을 가지라”고 격려했다.
시간을 쪼개 후배 감독들의 작업을 본 뒤 의견을 말하며 섬세하게 챙기기도 한다. ‘옥자’를 함께 작업한 조 씨가 봉 감독에게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봐 달라고 부탁하자 당시 ‘기생충’ 시나리오를 쓰던 봉 감독은 집필이 끝난 직후 40분 분량의 음성 파일을 보냈다.
“‘(기생충) 시나리오를 4∼5개월간 썼더니 키보드 만지기가 싫어서 음성으로 녹음했다. 저질 팟캐스트를 듣는 기분이라도 이해해 달라’는 웃음 섞인 봉 감독님 목소리에 저도 웃었죠. ‘이 길로 가자’고 하면 우르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최고의 선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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