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돼 재판에서 배제했던 법관들에 대해 17일 재판부 복귀 인사를 내면서 “사법연구 발령은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졌던 잠정적인 조치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8명의 법관에 대해 사법연구 발령을 낸 김 대법원장은 “피고인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는 법관이 재판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의 사법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고려해 사법연구를 명령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법연구 기간이 이미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형사판결 확정 때까지 사법연구 기간을 계속 늘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해당 판사들을 재판부에 복귀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해당 판사들에 대한 1심 선고 여부보다는 ‘사법연구 장기화 방지’에 초점을 뒀다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법연구는 법관들이 재판 업무를 맡지 않고 국내외에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판사들의 재판부 복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에 대해 사법연구 발령을 낼 당시와 사정이 달라진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8명 중 4명의 법관에 대해선 1심 선고가 내려졌고 이 4명 모두가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항소심 재판을 계속 받아야 한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연구 인사 조치를 내리면서 밝혔던 ‘국민들의 사법 신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변호사는 “다른 것도 아닌 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판사들도 있는데 이들을 재판에 복귀시키면 국민들은 사법 신뢰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14일 1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재판부는 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 징계 사유에 해당하고 위헌적 행위라고까지 밝혔다.
기소된 판사들에 대한 사법연구 발령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사법연구는 말 그대로 판사들이 연구를 하는 것인데 이를 징계성 인사의 도구로 삼았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애초에 사법연구 발령이 기형적인 조치였다. 이번에 그 한계가 드러났다고 봐야 한다”며 “재판 개입 의혹이 불거진 판사들은 처음부터 법관탄핵을 하거나 징계의 대상으로 삼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법연구 명령을 받은 판사는 스스로 연구 과제를 선정하거나 대법원에서 부여한 과제를 연구한다. 8명의 사법연구 기간은 이달 29일까지였다. 검찰 측도 기소된 법관들을 재판에서 배제했을 당시와 지금의 사정이 달라진 것이 없는데 1심 판결조차 나오지 않은 법관들까지 재판부에 복귀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법원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재판부 복귀 법관 중 서울고법 소속 부장판사 3명은 다른 법원으로 인사 발령을 냈다. 이민걸 부장판사는 대구고법으로, 임성근 부장판사는 부산고법으로, 신광렬 부장판사는 사법정책연구원으로 전보됐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임 부장판사와 신 부장판사는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게 되는데 이들이 서울고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 법원의 사무분담이 확정되지 않아 재판부 복귀 판사들이 정확히 어떤 업무를 맡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울동부지법 성창호 부장판사는 민사52단독 재판부에 배정됐다. 민사52단독은 신청사건 전담 재판부로 사건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 주로 서면으로 재판한다. 다른 법원도 재판부에 복귀하는 판사들을 사건 당사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비대면 재판부’로 배정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임 부장판사도 비대면 재판부로 분류되는 조정총괄부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