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힘 축적해 ‘문화공화국’으로[동아 시론/황영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9일 03시 00분


기생충 수상, 경제-문화 파급 확산… 한국영화 할리우드 진출 늘어날 듯
정교한 스토리텔링은 강력한 힘… 韓 문화 콘텐츠, 브랜드로 기획해야
제2, 제3의 시너지 효과 낼 것

황영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숙명여대 교수
황영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숙명여대 교수
작가 밀란 쿤데라는 “카프카는 벽을 넘은 사람이 아니라, 벽에 구멍을 뚫은 사람”이라고 평했다. 미국 아카데미 주요 상 4관왕과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기생충’ 역시 영화 자체의 흥행은 물론이고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 면에서 벽에 구멍을 뚫은 효과를 낼 것이다. 지난 주말 동안 오스카 효과로 기생충이 그동안 북미에서 거둔 총수입의 20%에 해당하는 수익을 거뒀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영화 콘텐츠가 주문형 비디오(VOD)나 DVD 등으로 출시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연일 기록 경신을 할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 완성작 수출 총액은 약 3788만 달러(약 450억 원)로 전년보다 8.9% 감소했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내 자동차 회사가 배기량 2000cc급 중형 승용차 한 대를 수출할 때 200달러(약 24만 원)의 순이익을 얻는 것과 비교하면 19만 대를 수출해서 벌어들일 수 있는 액수이다. 기생충 수상 이후 이에 따른 국가경쟁력 및 경제적 상승 효과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영화계로의 할리우드 러브콜도 많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10년간 할리우드 시스템에 가장 먼저 진출한 한국 감독은 아널드 슈워제네거를 주연으로 한 상업영화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운 감독이다. 이 영화는 김 감독의 매력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참신한 소재도 아니었고, 흥행 성적은 국내 7만 관객에 불과했다. 북미에서도 쓴맛을 보았다. 니콜 키드먼과 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주연을 맡은 ‘스토커’의 박찬욱 감독은 독특한 감독만의 스타일로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많은 초청을 받았지만, 흥행에 있어서는 국내 37만 관객에 북미에서도 165만 달러의 저조한 수입밖에 올리지 못했다. 이후 온라인 스트리밍 회사인 넷플릭스의 투자로 만든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지만 흥행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기생충 이후 한국 영화인들의 할리우드 진출은 분명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중예술 장르인 영화는 대중성과 예술성의 부정교합의 운명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필자가 동아일보에 영화 별점을 쓰던 10여 년 전에는 대중성과 예술성 별점을 각각 따로 쓰기도 하였다. 그런데 기생충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이 이란성 쌍생아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기생충의 성공은 영화계 대내외적 상황을 성찰하게 한다. 영화 제작 과정의 요소 중 중요치 않은 것은 없지만, 기생충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자본으로 계급을 나누는 ‘냄새’라는 디테일의 발화점이다. 오감 중 후각이 가장 원시적이면서 근원적인 감각이라고 한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소설 ‘향수’에서 냄새의 천재 그르누이를 탄생시켜 근대 이성중심주의가 후각에 굴욕을 당하는 스토리텔링을 구현했다. ‘기생충’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려면 스토리텔링에서부터 정교하고 상징적인 디테일의 완성도를 중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외적으로는 자본을 들여 만들어진 문화 콘텐츠를 브랜드화해 또 다른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 즉, 스토리텔링의 문화 콘텐츠화는 미래의 블루오션인 컬처 비즈니스가 될 수 있다. 최근 기생충 촬영지를 배경으로 ‘영화 전문가와 함께하는 팸투어(familiarization tour)’를 계획한다는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의 소식은 바람직해 보인다. 영화 촬영지를 콘텐츠화해 방문객을 유치하면 전 세계에 새로운 한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관광 수입을 부가가치로 올릴 수 있다. 방문객들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으로 자신만의 영화를 재탄생시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제 기생충 수상을 기뻐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기생충으로 높아진 문화적 위상으로 문화적인 한류를 넘어서 경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2차 3차 효과를 창출할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콘텐츠의 힘으로 문화공화국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 개인의 성공이 평창 겨울올림픽 개최에 긍정적 효과를 미쳤던 것처럼, 국가적 홍보 전략을 발휘하여 봉준호 개인의 영화적 역량이 우리나라가 웰메이드 영화의 본산지로, 제2의 할리우드로 인식되도록 하는 국민적 관심과 제도적 문화기획이 필요한 때이다.
 
황영미 한국영화평론가협회장·숙명여대 교수
#기생충#문화기획#문화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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