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6년 알파서울(옛 서울). 우주로 연결되는 신형 크루즈 엘리베이터 노선이 X-김포 정류장을 기점으로 완공된다. 충돌사고 원인 조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알파서울로 돌아온 엔지니어 스텔라는 인공지능(AI) 정부의 심리감시 시스템에 의해 뜻밖의 위기를 맞는다….’
지난해 말부터 네이버의 아마추어 창작웹툰 게시판에 연재되고 있는 ‘서울 크로니클’의 최신 에피소드다. 작가는 벨기에 출신 건축가 로랑 페레이라 씨(48). 그는 건축가 최성희 씨와 함께 2005년부터 서울에서 최-페레이라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14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베테랑 건축가가 웹툰이라니 어쩐 일일까. 페레이라 씨는 “201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축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최춘웅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와 함께 참여해 밤섬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도시 공간의 변화상을 만화로 표현한 작업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고향 브뤼셀에서 꼬마 때부터 날마다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학업과 일에 집중하게 되면서 건축 스케치 외에 본격적인 그림 작업은 그만뒀다. 비엔날레 프로젝트로 거의 20년 만에 다시 화구를 잡았다. 그림 그리기가 내게 얼마나 큰 행복이었는지 돌이킬 수 있었다.”
20년간 그림 작업을 멈췄던 이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표현이 정묘(精妙)하다. 그림과 이야기가 서로 헛돌지 않고 촘촘히 맞물려 시공을 한없이 확장하는 건축가의 상상을 매끄럽게 전달한다. 페레이라 씨는 “잉크 펜과 붓으로 윤곽과 음영을 잡고 나서 스캔한 이미지 위에 컴퓨터로 약간의 색을 입힌다”고 했다.
1960∼2000년대 서울을 묘사하던 이야기가 2066년, 2086년으로 뻗어나간다. 야간 통행금지가 실시되던 시절 종로 뒷골목에서 벌어지던 취객과 경찰의 숨바꼭질, 6·25전쟁의 잔흔이 또렷하던 시기 한강 둔치의 모습이 그때 그곳에 머물렀던 이의 기억처럼 재생된다.
“만화 속 공간은 과거와 현재의 재료를 결합해 조직했다. 한국 친구들이 건네준 경험담과 자료에 내가 서울에서 살며 수집한 이미지를 씌웠다. 어렸을 때 당신이 본 서울의 모습은 아마 대부분 사라졌을 거다. 그런 광폭한 변화에 서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상상하면서 그렸다. 내게는 지금의 서울이라는 공간과 이곳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된다.”
그가 그려낸 2080년대의 서울은 AI가 시장 자리에 앉아 행정을 이끄는 도시다. 경제와 교통 관련 문제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해결하는 사회. 시민들은 ‘어떤 컴퓨터가 삶에 더 유용할지’를 고민하고 투표권을 행사한다. 날아다니는 자동차와 우주행 엘리베이터가 어색함 없이 움직인다. 페레이라 씨는 “60년 전의 서울을 돌이켜보면 실현 불가능한 상상이 아니다. 나는 서울만큼 직설적이고 급속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도시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건축과 만화는 모두 작가의 상상과 분석적 관념을 현실적 이미지에 투영해 의도한 방향의 형태를 빚어내는 작업이다. 그런 상상과 분석을 이끌어내는 에너지는 대상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누군가 ‘이태원을 사랑한다’고 할 때 그가 언급한 이태원이란 대체 뭘까. 텅 빈 거리에 자신의 이상적 열망을 투영한 환상의 총체일 거다. 그런 환상의 에너지가 세계 어떤 도시보다 강한 곳. 그게 바로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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