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신선한 사람이고 싶다[2030 세상/정성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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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동창회 가는 것이 민망할 때가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때문이다. ‘땡땡아, SNS로 소식 잘 보고 있어. 대표님이라면서?’ 그럴 때면 내가 올린 게시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시시콜콜한 ‘TMI(Too much information·너무 많은 정보)’부터 은근한 자랑 넘치는 포스팅까지. 쓸 땐 몰랐지, 소싯적 친구까지 볼 줄이야. 가끔 누가 내 회사명을 말하면 속으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냥 개인사업자 내려고 만든 이름이에요.

‘편의에 맞게 비디오를 만듭니다, 비디오편의점.’ 나는 알바생이자 사장님이다. 알바생일 때는 고객에게 필요한 영상을 만들어주고 돈을 받으며, 사장님일 때는 번 돈으로 만들고 싶은 걸 만든다. 1인 기업식 세계관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멀티 페르소나’(다중적 자아·개인이 상황에 맞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를 수행하진 못했다. 알바생이 돈맛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자체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다짐은 그렇게 멀어져갔다.

그러다가 TV에서 이상한 사람을 봤다. ‘둘째 이모 김다비’, 자칭 빠른 1945년생 트로트 가수란다. 75세? 빨간색 골프웨어와 레이스 장갑, 한껏 솟은 머리 뽕과 심한 사투리. 압권은 립스틱 묻은 치아다. 현실 고증의 중년 여성 캐릭터는 근로자의 날을 맞아 ‘주라주라’라는 노래를 발매했다며 ‘아침마당’에서 부르고 있었다. ‘입 닫고 지갑 한 번 열어주라 회식을 올 생각은 말아주라 주라주라주라 휴가 좀 주라∼ 마라마라 야근하덜 말아라 칼퇴칼퇴칼퇴 집에 좀 가자∼ 가족이라 하지 마이소 가족 같은 회사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

황당할 정도로 실력파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코미디언 김신영 아냐? ‘쇼 음악중심’에 이어 ‘유희열의 스케치북’까지 무대를 뒤집어 놓으셨다. “혹시 김신영 씨 아니세요?”라는 MC의 질문에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떼는 김신영, 아니 둘째 이모 김다비. 사람들은 웃겨 죽는다. 최근 대중문화에 대세인 ‘기믹(gimmick)’ 놀이다. 기믹이란 관심을 끌기 위해서 사용되는 특별한 전략, 눈속임을 뜻한다. 펭수를 예로 들자. 비슷한 캐릭터는 많았지만 단순히 ‘인형 탈을 쓴 연기자’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펭수는 펭수였다. 연기자의 정체가 탄로 나자 ‘눈치 좀 챙기라’는 댓글이 넘쳐날 정도로 열 살짜리 EBS 연습생의 세계관은 견고했다. 사람들은 ‘덕질’을 했고, 짜고 치는 놀이에 환호했다.

여기에 ‘부캐’ 문화가 더해졌다. 부캐는 ‘둘째’를 의미하는 부(副)와 캐릭터를 합쳐서 줄인 말로, 자기 캐릭터가 아닌 다른 캐릭터 계정으로 활동하는 것을 뜻한다. 김신영의 ‘본캐(본래 캐릭터)’가 코미디언이라면, 부캐가 둘째 이모 김다비인 셈이다. 한 예능에서 했던 ‘밥집 이모 애드리브’를 내세워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성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타인에게 기대되는 정체성과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 간의 충돌을 관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오프라인 일상’에 비해, 이를 디지털 기술로 관리할 수 있는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제야 내가 동창회에서 부끄러웠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현실보다 조금 더 멋진 나를 온라인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보니 조금 더 뻔뻔해져도 될 것 같다. 내가 만든 세계관을 사랑하고, 거기서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 밤은 부캐를 연구하자.
 
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
#둘째 이모 김다비#부캐#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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