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없다고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나마 같은 처지의 주변 상인끼리 서로 팔아주며 근근이 버티고 있어요.”(경남 창원시 상남시장 상인)
“재난지원금이 풀리면서 겨우 한숨은 돌렸지만 목말라 죽겠는 사람에게 물 한 모금 수준이에요. 결국 기업이 정상화되고 경제가 돌아야 돈이 돌겠죠.”(부산 남포지하도 상가 상인)
‘대한민국 제조업 1번지’로 불리던 부산울산경남 지역은 명성에 걸맞은 모습이 어디에도 없었다. 자동차, 조선, 기계 산업의 메카인 이곳은 지난해 내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경기가 올해 반짝 살아나려나 싶더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폭탄으로 초토화됐다. 18일 만난 이 지역 소상공인들은 “사는 게 아니라 버티고 있다”고 했다.
경남 창원시 중심가의 상남시장에서 만난 인쇄소 주인 안모 씨(41)는 “이 사달이 언제 끝날지 두렵다”고 했다. 명함, 사원증, 식당 차림표와 인쇄물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안 씨는 “기업이 사람을 뽑고 그 직원들이 돌아다녀야 명함 주문이 들어오거나 사원증을 만들 텐데 3월부터 그나마 있던 일감도 뚝 떨어졌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 인근 치과에서 전표, 계산서 주문이 들어왔다. 안 씨는 “그래도 약간이라도 경제활동을 하는 일부 동료 상인들이 이런 소액 주문을 해줘서 굶지 않고 산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창원 상남시장은 2월 말 인근 한마음창원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뒤 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방역이다 뭐다 하는 통에 상남시장 인근 상권은 사람 하나 지나지 않는 곳이 됐고 식당들은 일손을 놓고 문을 닫았다. 이곳에서 60여 년간 2대에 걸쳐 방앗간을 운영 중인 상인 우모 씨(50)는 “코로나가 창원에서 ‘돈 길’을 끊어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춧가루와 참기름 등 식자재를 사가던 지역 식당, 요식업소 등의 주문이 급감한 것이다. 우 씨는 “올해 들어 경기가 좀 풀릴 것이라는 말이 많아 1월에 4500만 원을 들여 자동화 기계를 들여놨는데 지금은 그냥 기계를 쳐다보고 앉아만 있다”고 했다.
부산의 주요 상가밀집 지역 상인들도 “한마디로 폭탄을 맞았다”고 입을 모았다. 남포지하도 상가에서는 285개 점포 중 30개가 올 들어 문을 닫았다. 문경채 상인회장은 “남은 상가도 작년보다 매출이 80∼90% 떨어진 곳이 많아 대부분 대출로 연명한다. 부산시가 임대료를 3개월간 절반 낮췄지만 더 연장하지 않으면 연쇄 도산하는 점포가 줄을 이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일부 상인들은 “추가 지원책이 나오지 않으면 모두 점포 문을 닫고 집단행동을 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산의 중심 상권인 서면도 마찬가지다. 서면 1번가의 한 옷가게 주인은 “평일에는 손님이 1, 2명인 날이 대부분”이라며 “빚을 내 임차료를 내고 있는데 언제까지 장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주부터 재난지원금이 풀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소비촉진 등 비상경제대책이 가동되면서 약간 숨통이 트이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상인들은 “그래도 멀었다”고 했다. 상남시장 방앗간 주인 우 씨는 “재난지원금을 전통시장에서 쓸 수 있게 되면서 5월 매출이 다소 회복세에 들어섰다”며 “손님들이 1개 사려 했던 걸 3, 4개 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원금은 일회성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창원시는 소상공인 6만7000여 명에게 경영안정비 50만 원을 지원하고 주민세와 상하수도 요금을 감면했다. 당초 소상공인 점포 83곳에만 지원하려던 점포 시설개선 대상도 500곳으로 늘렸다. 불편했던 좌식 식당을 입식으로 바꾸는 등 코로나19로 손님이 줄어든 기간을 점포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기회로 만들자는 역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창원시 관계자는 “지역민의 고용과 생존을 최우선으로 놓고 가능한 대책을 적극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인식 부산 서면중앙몰 상인회장은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주거지 상가는 조금씩 회복되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대형 상업지역은 혼잡을 우려해 기피 현상이 여전하다”고 했다.
상인들은 코로나19 이후의 삶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선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 소비의 근간인 기업 활동을 되살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봤다. 재난지원금 같은 일회성 재정 투입으로는 가뭄에 반짝 소나기일 뿐 근본적 처방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창원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창원의 근로자 수는 25만141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92명 감소했다. 전년 대비 근로자 수가 줄어든 건 2017년 1분기 이후 처음이다. STX조선해양 사태 후 최근 두산중공업, 한국GM 등 지역 경제의 토대가 되는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곳 근로자들의 소비가 급감하자 지역 경제 전반으로 침체가 확산되고 있다. 부산 역시 3월 신설 법인 조사 결과 고용창출 효과가 큰 요식업과 숙박업 등이 부진했다. 서비스업 법인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0.7%나 감소한 109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상남시장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 씨(62)는 “4년 전만 해도 창원 시내에서 저녁이면 작업복 차림의 근로자들이 회식과 소비활동을 하는 걸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며 “이제 바라는 게 뭐 있겠나.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 경기가 다시 좋아지는 것 밖에는…”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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