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건강문제’ 논의조차 못 하나[동아 시론/안드레이 란코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7일 03시 00분


金 은둔 길어지자 신변 두고 논란… 한국 정부는 ‘이상설’ 언급도 꺼려
北 급변 시 핵유출, 미중충돌 우려… 눈감지 말고 위험 상황 대비하라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올 4월 11일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두 번뿐인데, 두 번 모두 참가자들이 그리 많지 않은 행사일 뿐만 아니라 평소와 다른 여러 특이점이 보였다. 공개석상에 나타날 때마다 그의 건강에 대한 의심은 보다 커지는 느낌이다. 4월에 김 위원장이 3주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때, 한국 언론과 일부 정치인들이 ‘신변 이상설’을 제기하자 청와대는 모든 것이 ‘오보’라고 반복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주목도를 낮추려 많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일반인 대부분은 김 위원장의 건강 이야기를 그저 ‘또 하나의 가짜 뉴스’로 보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은 완전한 오보는 아닌 것 같다. 김 위원장이 4월에 3주간 등장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었는데, 4월 15일에 금수산 태양궁전 참배를 하지 않은 것은 더욱더 이례적인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5월 1일 이후에도 다시 3주간 사라졌다. 이후 24일 다시 그의 동정이 북한 관영언론에 보도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김 위원장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건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분명히 높다. 체중 문제가 심각하며 줄담배를 피운다. 그의 직업 자체도 스트레스가 많다. 그래서 김 위원장에게 건강 문제가 생겼고 그가 치료를 받고 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높다. 나는 오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여야 할지 의심스럽다. 한국 정부는 국내외 정치 상황을 고려해 북한에 별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이유가 충분하며, 북한 상황을 장밋빛으로 그릴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전쟁 직전 상황까지 갔던 한반도에서 치명적인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한국은 ‘사실과 거리가 멀지만 쓸모 있는 장밋빛 주장’을 셀 수 없이 많이 했다. 예를 들면, 북한은 일관되게 비핵화를 할 생각조차 없었지만, 한국 외교관 및 여권 정치인들은 북한 지도부에 강한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반복했다. 흥미롭게도 ‘선의의 거짓말’로 볼 수 있는 이 주장은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한국의 외교적 노력은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잠시라도 중단하고 미국이 북한 비핵화의 가능성을 믿거나 믿는 척하는 데 기여했으며, 위험한 상황을 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올 5월에도 한국 정부가 김 위원장 건강 이상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남북 관계에서 새로운 마찰이 생길 것이다. 남북 관계를 중요시하는 한국 정부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건강 문제 가능성조차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는 것을 선호할 이유가 있다. 한편으로 국내 정치 때문에도 정권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생길 문제를 축소, 과소평가할 이유가 있다.

한국 정부가 이상한 상황을 못 본 척하는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는데, 한국의 사회와 언론도 정부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것은 걱정스러운 일이다.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변수이기 때문이다. 45일 동안 김 위원장이 거의 공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은 이 변수가 나타난 첫 경고음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번에 김 위원장의 은둔 생활은 그의 건강 상태와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으며, 코로나19에 대한 우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김 위원장의 고도 비만, 흡연, 과음, 스트레스 등을 감안하면 세월이 갈수록 그에게 건강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 사회, 언론 대다수는 이러한 전망에 관한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는 인상이 있다. 당연히 이러한 전망을 무서워할 이유가 많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급사(急死) 또는 장기적 와병은 동북아에서 지정학적인 진도 6, 7의 지진을 가져올 시나리오다. ‘보통 왕국’과 달리, 권력이양 규칙이 불투명한 북한에서는 지도자의 갑작스러운 유고의 경우 권력투쟁이 발생할 수도 있고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내전과 혼란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중동 국가와 달리 핵무기가 있으며, 미중(美中) 양국이 갈수록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역에 위치한 나라다. 그 때문에 북한의 혼란은 핵 유출 사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으며 한반도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러한 혼란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 재앙이 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당연히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분위기를 보면 한국 사회는 이 시나리오에 대해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고 있을뿐더러 객관적인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양대 교수
#北김정은#김정은 건강이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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