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의 핵심도 사람이다[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8일 03시 00분


루스벨트는 국민의 삶과 공동체 지켜내
사람에 투자하는 ‘휴먼 뉴딜’이 중심 돼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뉴딜은 단순히 재정정책이 아니라 사회개혁 정책이었다.”

요즘 여권에서 많이 들리는 말이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해 시행한 ‘뉴딜’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뉴딜 관련 여러 정책을 기획재정부 등 관료들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루스벨트는 경제를 살리려면 재정을 쏟는 것뿐 아니라 시장의 룰을 바꾸는 ‘새로운 사회협약(New Deal)’이 필요하다고 봤다. 뉴딜 정책은 테네시강 유역 개발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하고 공공 일자리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었다. 루스벨트는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부자에 대한 세금을 최고 79%로 올렸으며 금융 규제를 높이고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었다. 그는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면 ‘강남 좌파’였다.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자랐지만 기업가와 노동자 사이에 힘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정부가 개입해 부의 분배를 촉진하려고 했다.

이런 정책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느냐에 대해서는 경제사가들의 평가가 엇갈린다. 미국의 중산층을 두텁게 해 그 후 50년간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다는 평가가 하나다. 정반대로 이런 정책들이 공황 탈출을 더디게 했고, 결국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불황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공황으로 국민들의 삶이 비참해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득세하고 공산주의 세력이 커지던 시기에 미국은 자본주의를 지켰고 전쟁에서 이겼다. 뉴딜을 통해 최악의 상황은 막았던 것이다.

글로벌화가 진전되고 국제 경쟁이 치열해진 21세기에 당시의 정책 방향을 그대로 따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뉴딜이 단순히 재정을 푸는 것이 아니라 독점과 특권을 깨고 분배와 소비의 선순환을 만들려는 사회개혁이었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루스벨트는 이를 통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공동체를 지키려 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경제 위기를 맞아 정부가 ‘한국형 뉴딜’을 추진하고 있다. 다음 달 초 발표될 계획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노후 SOC 재건 등이 핵심이라고 한다. 세계 산업 지형에 변화가 예상되는 데다 일시적인 경기 부양을 넘어 미래 먹을거리까지 마련하려면 첨단산업을 선점해야 하니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정부 당국자들의 말 속에선 사회개혁은커녕 종합적인 철학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만약 한국형 뉴딜에 방향을 정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돼야 한다. 새로운 산업도 인재가 있어야 가능하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코로나 위기가 지나면 모두가 또 성장률에 집착하며 국내총생산(GDP)을 빨리 끌어올리자고 할 텐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성장률 같은 숫자보다 ‘코로나 루저(loser)’를 돌보는 데 힘을 쏟아야 같이 추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 뉴딜이건 그린 뉴딜이건 사람을 중심에 둬야 한다. 코로나 빈곤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주고, 세계 10위의 경제 규모에 걸맞게 모든 아이와 노인들이 돌봄을 받고, 세계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실력을 키우는 것은 모두 사람에 관한 일이다. 이제는 청소년 자살률과 노인 자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같은 불명예를 벗기 위해 구체적 노력을 할 때다.

앞으로 한국을 먹여 살릴 희망도 인재들이다. 시설이나 기계에 투자하기보다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미래를 선도할 수 있도록 대학 등 고등교육과 연구개발에 더 투자하고 직업훈련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한국형 뉴딜의 중심은 ‘휴먼 뉴딜’이어야 한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뉴딜정책#코로나19#루스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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