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회고록 “트럼프, 北美 정상회담 홍보행사로 여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8일 18시 19분


출간을 막기 위해 백악관이 소송전까지 불사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의 회고록의 내용이 미 언론에 공개됐다. 볼턴 전 보좌관은 17일(현지 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500쪽이 넘는 분량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 가운데 일부를 사전 공개했다.

회고록에는 메모광으로 알려진 볼턴 전 보좌관이 17개월 간 백악관에서 겪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빼곡하게 담겼다. 23일 출간 예정이었지만 출간을 막기 위해 백악관이 소송을 제기하자 볼턴 전 보좌관이 언론을 통해 핵심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그만큼 민감한 내용이 많다.

특히 회고록에는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담겨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홍보행사로 여긴 트럼프
‘트럼프의 중국 정책 스캔들’이라는 제목의 WSJ 기고에서 볼턴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포함한 주요 외교 안보 정책에서 국익보다 자신의 재선을 우선순위에 뒀다고 폭로했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만났던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노력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회담을 단순한 ‘홍보행사’로 치부했다고 혹평했다. 그는 “트럼프가 내게 ‘(내용이) 비어있는 성명서에도 서명할 준비가 됐다. 기자회견장에서 승리를 선언한 뒤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WP는 회고록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동석한 수행단의 대화와 현장 상황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전했다. 볼턴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에게 앨턴 존의 사인이 담긴 ‘로켓맨’ CD를 전해주는 데에 한동안 집착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볼턴은 “북한에 다녀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CD를 건넸냐’고 재차 물어봤다”며 “폼페이오가 북한 방문 중 실제로 김정은을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트럼프 대통령은) 모르는 듯 했다. 김정은에게 CD를 주는 일이 몇 달 간 (대통령의) 우선순위에 있었다”고 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나눴던 통화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그는 “당시 중미 순방 중이던 폼페이오 장관이 (이 소식을 듣고는 전화를 통해) ‘심장마비가 오는 줄 알았다’고 말했고, 나도 ‘거의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며 “통화에 대한 실망감을 나눴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통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이 국정 운영과 외교에서 철학 없이 직감에 의존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무시한 것으로 추측된다.

볼턴 전 보좌관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포함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 뒤엥서는 대통령을 조롱했다고 폭로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폼페이오 장관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중 볼턴에게 “그(트럼프)는 거짓말쟁이다”라는 쪽지를 건넸고 약 한 달 뒤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성공 확률 0%”라고 확신했다고 전했다.

●시진핑에게는 재선 위해 농산물 구입 부탁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미국산 대두와 밀을 구매해 자신의 재선을 도와달라고 간청했다고 볼턴은 주장했다. WSJ에 따르면 시 주석이 “현행 관세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추가 관세는 없다는 데 합의해야 한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에 경고한 25%가 아닌 10%를 유지하겠다”고 밝히며 자신의 재선을 위해 중요한 중국의 농산물 수입을 요구했다고 볼턴 전 보좌관은 전했다. 또 시 주석이 먼저 “트럼프 대통령과 6년 더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하자 트럼프도 “사람들이 나에 대해선 헌법의 연임 제한을 폐지해야 한다고 얘기한다”고 화답했다.

볼턴 전 보좌관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터키 등 자신이 좋아하는 독재자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관련 수사를 막으려 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 방해가 삶의 방식인 것처럼 행동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윌리엄 바 법무장관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고 했다.

임보미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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