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A 씨(63)는 최근 보험금 5000만 원을 수령하려다 오히려 경찰 수사를 받게 됐다. 남편, 자녀, 친구까지 동원해 총 11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9억7000만 원을 받아낸 사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A 씨의 수법은 치밀했다. 본인 명의로 된 총 4건의 보장성 보험(종합보험)을 가입해 두고 입원을 잘 시켜주는 동네 소형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무릎관절증으로 허위 입원을 했다. 철저하게 2주 이내의 단기 입원만 반복했다. 고액 보험금을 청구하고 장기 입원할 경우 보험사로부터 현장 심사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아들도 보험에 가입시켜 각각 무릎관절증과 요추부 추간판장애(허리디스크)로 입원해 보험금을 타내도록 했다. A 씨가 가족과 지인을 동원해 가입한 보험은 총 24건에 이른다.
4, 5년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던 A 씨의 덜미를 잡은 것은 인공지능(AI)이었다. A 씨가 보험금을 청구하자 교보생명이 도입한 AI 보험사기 적발시스템은 A 씨가 다닌 모든 병원을 검색하며 유사한 입원 패턴을 분석했고, 교보생명에 가입한 가족들의 청구 명세까지 모두 검토한 뒤 보험사기 의심사례로 분류했다. 결국 경찰 수사 결과 다른 보험사를 통한 사기행각까지 포함해 10억 원에 가까운 부정청구를 걸러냈다.
○ 빅데이터 학습해 숨겨진 보험사기 잡아내
보험업계가 도입한 AI 기반 보험사기·보험금지급 심사 적발 시스템이 점차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보험사기 수법이 나날이 고도화돼 보험사가 자체 인력만으로는 대응하기 힘든 상황에서 AI가 1차 감시망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A 씨 사례를 적발한 교보생명의 AI 시스템은 ‘K-FDS(Kyobo Fraud Detection System)’라는 명칭으로 지난달 도입됐다. 스스로 보험사기 유형을 분석하고 과거의 사례를 학습해 이와 유사한 행동을 보이는 대상을 적발해 내는 구조다. 머신러닝 기법으로 보험계약, 사고정보 등 데이터를 업데이트해 보험사기 발생이 빈번한 질병, 상해군을 자동으로 분류한다. 2018년 7월부터 시범 운영을 한 결과 A 씨와 유사한 사례를 총 205건이나 인지했다.
ABL생명도 AI 보험사기 예측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지난해 11월 도입했다. 계약 후 사고 경과 기간, 납입 금액 및 횟수, 청구금액 등 변수 800여 개를 활용해 AI가 의심사례를 걸러낸다. 보험사에 병력을 알리지 않고 허위로 계약한 뒤 보험금을 청구한 B 씨의 사기 행각도 AI가 포착했다. B 씨는 2017년 10월 실손보험에 가입한 후 우측 발목의 섬유성 점액낭염으로 입원비를 청구했다. 과거 같았으면 일사천리로 보험금이 지급될 사안이었지만 AI는 해당 질병을 보험사기 위험군으로 분류해 현장 심사 진행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놨다. 그 결과 B 씨가 보험 가입 직전 3개월 동안 같은 질병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ABL생명에 따르면 올해 들어 AI가 짚어낸 실손보험 청구 의심사례 중 실제로 조사를 거쳐 보험금 지급이 거절된 비율이 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ABL생명 관계자는 “오랜 기간 척추디스크를 앓았으면서도 이를 숨기고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적발돼 계약 해지 통보를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화생명도 최근 3년간 모은 1100만 건의 보험금 청구 데이터를 학습해 실시간으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심사하는 ‘클레임 AI 자동심사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현재 약 25%인 자동심사율을 50%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 갈수록 교묘해지는 보험사기에 효과 톡톡
보험사들이 AI까지 동원하는 것은 보험사기가 갈수록 확대되고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8809억 원으로 전년(7982억 원)보다 827억 원(10.4%) 증가했다. 적발 인원도 9만2538명으로 전년 대비 1만3359명(16.9%) 늘었다. 하루 평균 254명, 24억 원이 보험사기로 적발됐다는 얘기다. 금액과 인원 모두 금감원이 관련 집계를 낸 이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최근에는 인터넷 카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일자리·급전 필요한 분’ ‘고액 일당 지급’ 등의 광고를 가장해 자동차 보험사기 공모자를 모집하거나 보험금을 많기 받기 위한 ‘보험 꿀팁’이라며 보험사기를 조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사회경험이 적은 사회 초년생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층이 보험사기인지도 모르고 보험사기에 발을 들이고 있는 셈이다.
AI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지능적, 조직적인 보험사기를 걸러내 업무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일본 미쓰이스미토모보험은 AI를 활용하면 보험금 지급 업무를 18% 줄일 수 있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손해보험협회 차원에서도 AI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은 “AI 기반의 보험금 자동 심사를 도입하고 고도화된 보험사기 의심 건을 좀 더 손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고도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민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보험사기 적발 및 방지에 인력, 비용을 많이 투입해야 해 대응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며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해 보험사기를 잡아내면 선량한 보험가입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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