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3종 선수 가혹행위에 극단선택
부친 “관계기관이 팀동료 증언 무시… 딸, 혼자 싸운다는 것에 힘들어해”
훈련일지에 “비온날 먼지나게 맞아”… 대한체육회 진정뒤 별조치 없어
文대통령 “문체부 차관이 챙겨라”
“(딸은) 마지막까지 홀로 싸우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어했습니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국가대표 출신인 고(故) 최숙현 선수(23)의 아버지는 2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고인은 지난해까지 소속돼 있던 경주시청의 감독과 동료들에게 지속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 선수는 지난달 26일 부산에 있는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딸이 여러 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담당자들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마지막까지 고통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유족에 따르면 최 선수는 2017∼19년 경주시청 소속 선수였다. 당시 고인은 감독과 동료선수, ‘팀 닥터’라 불리는 관계자 등에게 여러 차례 폭행과 폭언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2일 공개된 음성파일에 따르면 소속팀 관계자에게 심한 욕설과 함께 폭행을 당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고인에게 “맞을 자격이 없다”라며 다른 동료 선수를 대신 때리기도 했다. 이들이 최 선수 등을 폭행하는 도중에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소리도 나온다. 고인의 아버지는 “소속팀 관계자에게 ‘식빵 20만 원어치를 (한 자리에서) 다 먹으라’는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고, 이를 같이 당한 동료가 증언하기도 했지만 관계기관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고인은 당시 훈련 일지에도 이런 가혹행위를 기록했다. 최 선수는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 저 사람들이 그냥 무섭고 죽을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경주시체육회에 따르면 해당 팀 닥터는 의사나 물리치료 면허는 없고 전지훈련 등을 갈 때 개별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며 일시 고용한 인물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최 씨는 올해 2월 감독 등을 폭행과 모욕 등의 혐의로 대구지검 경주지청에 고소했다. 4월에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철인3종협회에 신고하고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최 씨가 숨지기 전날인 지난달 25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시켰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 관계자는 “2월에도 비슷한 진정이 들어왔지만 당시엔 경찰에 형사고소를 하겠다며 진정을 취소했다”고 했다.
3월부터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감독과 팀 닥터 등 4명을 5월 29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고인에게 상습적으로 가혹행위와 폭언 등을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반면 대한체육회는 4월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에 진정서 접수 뒤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선수의 아버지는 “가혹행위 등을 알렸던 한 기관은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진행상황을 물어봤더니 ‘팀이 전지훈련을 떠나 당장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경주시체육회는 2일 오후에야 운영위원회를 열고 관련자 징계 여부 등을 논의했다. 체육회는 해당 감독이 선수단 관리 등을 소홀히 했다는 판단에 따라 직무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폭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선수 2명은 현재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기인 출신인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나서서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자체 조사와 별도로 최 차관을 단장으로 한 특별조사단을 구성했다. 사건의 자세한 경위를 조사한 뒤 문제가 드러나면 관련자들을 처벌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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