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대부인 존 루이스 전 민주당 하원의원(80)이 17일(현지시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각계 저명인사들이 애도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언론들이 특집 기사를 쏟아내는 등 미국 전체가 추모 분위기에 휩싸였다. 루이스 전 의원과 불편한 관계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뒤늦게 미 전역에 조기를 게양하는 포고문을 내놓고 추모의 글을 발표했다.
1940년 앨라배마주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루이스 전 의원은 15세 때 라디오에서 마틴 루터킹 목사의 연설을 듣고 흑인 민권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 그는 식당,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도록 규정한 ‘짐크로 법’에 반대하기 위해 식당에서 연좌 농성을 하다가 여러 차례 체포, 수감됐다. 또 1961년에는 백인 시민운동가와 함께 버스를 타고 워싱턴 DC에서 뉴올리언스까지 가는 ‘프리덤 라이더스’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길에서 만난 백인들에게 각목과 야구방망이 등으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맞기도 했다.
루이스 전 의원을 세상에 알린 것은 196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이었다. 앨라배마주 셀마 시에서 600여 명의 흑인들이 에드먼드페터스 다리를 건너는 평화행진을 벌이다 경찰에게 폭력 진압을 당했던 일이다. 당시 그가 땅에 쓰러진 채 경찰에게 맞아 두개골이 골절되는 장면이 TV에 보도되면서 흑인들에 대한 억압과 차별이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는 결국 그해 8월 린든 존슨 대통령이 흑인 참정권을 인정하는 연방 투표권법에 서명하는 계기가 됐다. 루이스 전 의원은 1981년 애틀란타 시의회 의원으로 정계 입문한 뒤 1986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2011년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루이스 전 의원은 지난해 말 췌장암 4기로 투병 중인 사실을 알리면서 “민권운동을 했던 그 의지로 병도 극복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17일 “오늘 미국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을 잃었다”며 그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내가 로스쿨에 들어갔을 때 처음 존을 만나 ‘당신은 나의 영웅 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며 “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취임식 날 그를 껴안고 ‘당신의 희생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와 있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함께 성명을 내고 “우리는 거인을 잃었다”며 “그는 미국의 평등과 정의를 되찾기 위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놨다”고 추모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내내 침묵하다가 18일 오후 “민권 영웅 존 루이스의 별세 소식을 듣고 슬픔에 잠겼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 우리의 기도를 보낸다”는 짧은 트윗을 남겼다. 루이스 전 의원은 생전에 트럼프 대통령에게 “합법적인 대통령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주의자”라며 공격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말만 하고 행동은 없다”고 비난하는 등 서로 거친 논쟁을 주고받았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도 성명을 내고 “그는 우리를 어디로 인도해야 할지,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항상 알고 있는 도덕적 잣대와 같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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