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흑인 인권운동 대부’ 존 루이스 前 의원 별세
1965년 킹 목사와 ‘셀마 행진’ 주도, 경찰 피의 진압… 흑인 참정권 도화선
2011년 민간인 최고 영예 훈장 받아… 거친 논쟁 주고받았던 트럼프
뒤늦게 “애도” 전국 조기 게양 지시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전 민주당 하원의원(80·사진)이 17일(현지 시간)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각계 저명인사들이 애도하는 메시지를 냈고, 언론에서는 특집 기사를 싣는 등 미국 내에서 추모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루이스 의원은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함께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을 이끈 ‘6명의 거물 운동가’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마지막 생존자였다. 1940년 앨라배마주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5세 때 라디오에서 킹 목사의 연설을 듣고 흑인 인권운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 그는 식당, 버스 등 공공장소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도록 규정한 ‘짐 크로 법’에 반대하며 연좌 농성을 하다가 여러 차례 체포, 수감됐다. 1961년에는 버스를 타고 워싱턴에서 뉴올리언스까지 가는 ‘프리덤 라이더스’ 운동을 벌이다 백인들에게 각목과 야구방망이 등으로 의식을 잃을 때까지 맞기도 했다.
루이스 전 의원을 세상에 알린 것은 196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이었다. 앨라배마주 셀마시에서 600여 명의 흑인이 에드먼드페터스 다리를 건너는 평화행진을 벌이다 경찰에게 폭력 진압을 당했던 사건이다. 당시 그가 땅에 쓰러진 채 경찰에게 맞아 두개골이 골절되는 장면이 TV에 나가면서 인종차별이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결국 그해 8월 린든 존슨 대통령이 흑인 참정권을 인정하는 연방 투표권법에 서명하는 계기가 됐다.
루이스 전 의원은 1981년 애틀랜타 시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986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2011년에는 오바마 전 대통령으로부터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영예인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받았다. 루이스 전 의원은 지난해 말 췌장암 4기로 투병 중인 사실을 알리면서 “민권운동을 했던 그 의지로 병도 극복해 나가겠다”고 말했지만 결국 병마를 이겨내지 못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내가 로스쿨에 들어갔을 때 처음 존을 만나 ‘당신은 나의 영웅’이라고 했다”며 “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는 취임식 날 그를 껴안고 ‘당신의 희생 덕분에 내가 이 자리에 와 있다’고 말했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함께 성명을 내고 “우리는 거인을 잃었다”며 “그는 미국의 평등과 정의를 되찾기 위해 가진 모든 것을 내놨다”고 추모했다.
루이스 전 의원과 불편한 관계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18일 뒤늦게 미 전역에 조기를 게양하는 포고문을 내놓고 “민권 영웅 존 루이스의 별세로 슬픔에 잠겼다”는 추모의 글을 발표했다. 앞서 루이스 전 의원은 생전에 트럼프 대통령을 “인종차별주의자”라며 공격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말만 하고 행동은 없다”고 비난하는 등 서로 거친 논쟁을 주고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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