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 외교관 A 씨를 송환하라는 뉴질랜드 정부의 압박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례적으로 이 사건을 언급한 데 이어 부총리까지 “결백하면 뉴질랜드에서 조사를 받으라”고 밝혔다. 2017년 말 A 씨가 뉴질랜드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현지 채용 백인 남성을 세 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발견했음에도 외교부가 2년 반 남짓 쉬쉬하다 문제를 키워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윈스턴 피터스 뉴질랜드 부총리 겸 외교장관은 1일(현지 시간) 자국 매체 뉴스허브 방송에 출연해 A 씨에게 “결백하다면 자진해서 뉴질랜드로 와 조사를 받으라”고 밝혔다. 그는 “이 사건은 양국 외교부 최고위층 간에 전달이 된 사안”이라며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 외교 면책권을 거둬들이고 그를 뉴질랜드에 돌아오도록 하는 것은 한국 정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에 문제 해결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피터스 장관은 아던 총리가 지난달 28일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강경하게 요구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그는 아던 총리가 “이 사안은 뉴질랜드에서 매우 심각한 혐의다. 이 내용이 대통령에게까지 전달이 안 됐다면 대통령이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 답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당시 “우리 외교관 성추행 의혹 건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는 짧은 서면 브리핑만 내놨다.
피터스 장관은 한국 정부에 A 씨의 외교관 면책권을 포기하게 하라면서 “이제 공은 한국 정부에 넘어갔다”고도 말했다. 외교부는 A 씨가 “면책권 대상이 아니다”라는 점은 인정한다. 면책권은 외교관이 해당 주재국에 근무하는 동안에만 적용받는다. A 씨는 현재 아시아 국가의 총영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면책권이 없다. 다만 외교 관례상 제3국이 한국 외교관을 뉴질랜드로 송환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외교부가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A 씨에게 경징계를 내려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가 ‘내 식구 감싸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해 ‘몽골 헌법재판소장 승무원 성추행’ 사건 때는 “헌재소장은 몽골 공관 소속이 아니라 면책권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냈다. 이에 따라 경찰이 인천국제공항 터미널에 머물던 몽골 헌재소장을 입건해 조사한 뒤 10일간 출국 금지 조치를 취했다. 문제의 헌재소장은 약식 기소가 확정돼 해임됐다. A 씨에 대한 외교부의 태도는 몽골 헌재소장 사건 때와 배치된다.
이재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외교부가 우선 A 씨를 한국으로 불러들여 우리 법에 따라 형사 처벌하는 방안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뉴질랜드가 A 씨의 송환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라 이를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