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폭탄에 한탄천 범람, 민통선 마을 사라져…철원 21년 만에 또 물난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5일 20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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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폭우로 인한 한탄강 범람으로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일대가 침수됐다. (독자 제공) 2020.8.5/뉴스1 © News1
5일 폭우로 인한 한탄강 범람으로 강원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일대가 침수됐다. (독자 제공) 2020.8.5/뉴스1 © News1
“한탄천이 넘치는 건 1999년 이후 처음입니다. 일부 주민은 고무보트를 타고 겨우 구조됐어요.”

강원 철원지역에 닷새째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5일 오후 한탄강의 지류인 한탄천이 범람했다. 한탄천 범람은 1999년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통제선 북쪽 마을들이 물에 잠기며 주민 700여 명이 긴급 대피했다. 철원 지역은 지난달 31일부터 최대 670㎜의 폭우가 쏟아진데다, 북한에서 흘러내린 물이 유입되며 마을이 침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 물 폭탄 맞은 한탄천…주민들 시름

5일 철원 한탄강이 폭우로 범람하면서 인근의 동송읍 이길리와 갈말읍 정연리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사진은 철원군 직원들이 마을 내 고지대에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 건네줄 생필품을 보트에 싣고 출발하는 모습. 2020.8.5/뉴스1
5일 철원 한탄강이 폭우로 범람하면서 인근의 동송읍 이길리와 갈말읍 정연리 마을 전체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사진은 철원군 직원들이 마을 내 고지대에 남아 있는 주민들에게 건네줄 생필품을 보트에 싣고 출발하는 모습. 2020.8.5/뉴스1
한탄천이 범람한 시점은 5일 오후 2시반경. 주민들에 따르면 침수된 마을은 범람 이전부터 다량의 물이 밀려들어왔다고 한다. 김화읍에 사는 권상렬 씨(52)는 “철원에 산지 20년이 넘었지만 한탄천이 넘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며 “침수되지 않은 마을들도 모두 불안해 대피를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침수된 마을은 갈말읍 정연리와 동막리, 동송읍 이길리, 김화읍 생창리 등이다. 철원군 관계자는 “앞서 해당 주민들에게 문자메시지로 긴급대피령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300여 세대에 거주하는 주민 700여 명이 인근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했다.

하지만 일부는 집에 남아있었다가 큰 변을 당할 뻔했다. 몇몇 주민들은 황급히 고지대로 피신했고, 고무보트를 동원한 119 대원들에게 구조되기도 있다.

해당 지역은 5일 낮부터 빗줄기가 약해졌지만 북한에 비가 많이 내리며 한탄천으로 많은 물이 유입돼 범람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철원군 관계자는 “한탄천 상류인 철원읍 대마리와 율이리 주민들도 초등학교 등으로 대피하도록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계속되는 폭우로 한탄강이 범람해 강원 철원군 4개 마을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5일 철원군에 따르면 동송읍 이길리와 갈말읍 정연리·동막리, 김화읍 생창리 등 총 395세대, 74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이날 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덕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이길리 주민들이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몸을 피해 있다. 2020.8.5/뉴스1
계속되는 폭우로 한탄강이 범람해 강원 철원군 4개 마을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5일 철원군에 따르면 동송읍 이길리와 갈말읍 정연리·동막리, 김화읍 생창리 등 총 395세대, 74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이날 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덕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이길리 주민들이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몸을 피해 있다. 2020.8.5/뉴스1
이길리와 정연리는 1996년에도 약 141가구가 침수되며 170억 원 이상 재산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1999년에도 한탄천 주변 마을이 물에 잠겨 100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배수펌프장을 건립하고 교량 정비, 하천개수 연장 등에 힘썼으나 이번 집중호우로 다시 수해를 겪게 됐다.

물 폭탄을 맞은 강원 지역에선 3일 실종됐던 남성(50)이 5일 홍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오전 9시 반경 홍천에서 한 주민(67)이 실종돼 경찰 등이 수색을 벌이고 있다.

● 폭우 또 올 수도…추가 피해 우려

5일 철원 한탄강이 폭우로 범람하면서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한 동송읍 이길리 마을의 수면 위로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2020.8.5/뉴스1
5일 철원 한탄강이 폭우로 범람하면서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한 동송읍 이길리 마을의 수면 위로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2020.8.5/뉴스1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5일 오전 10시 반 기준 올해 7, 8월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34명에 이른다. 23명이 목숨을 잃었고 11명이 실종됐다.

최근 10년 간 태풍이나 호우로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건 2011년이다. 7월 25~28일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리며 78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하지만 2013년부터 2018년까지는 1년 평균 약 4.1명으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태풍도 오기 전에 이런 인명 피해가 난 건 극히 이례적”이라 했다.

재난방지 전문가들은 수해로 인한 피해 양상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새로운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장마는 장기간 이어지는데다 한번 내리면 집중호우가 쏟아 붓기 때문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올해 들어 기상변화 요인 등으로 장마 기간에도 집중호우 발생 횟수가 많아졌고 강우량도 평년과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고 했다.

소방당국 등은 인명 피해가 추가 발생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5일 새벽 중국 상하이(上海) 근처에서 소멸한 제4호 태풍 하구핏(HAGUPIT)이 많은 양의 수증기를 공급해 6일부터 전국 대부분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장마 종료 시점은 10일 이후부터나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2일까지 비가 내릴 경우 올해 장마 기간은 50일로 2013년(49일) 기록을 뛰어넘게 된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자연재해는 꼼꼼하게 정보를 챙겨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철원=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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