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5일, 한 매체를 통해 소개된 한국형 항공모함 사업 계획 보도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정부가 ‘대형수송함-II’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던 사업을 ‘경항공모함 사업’으로 개칭하고 조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주변국의 반발을 의식해 ‘대형수송함’으로 불러온 차세대 함정의 함종을 해병대 상륙기능을 제거한 순수 항공모함으로 확정해 ‘경항공모함’이라고 명명하고, F-35B 전투기를 싣는 30,000t급 항공모함을 2030년까지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항공모함은 건조비 1조 8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3만t 이상, 4만t 미만의 만재배수량을 가진 선체로 등장할 전망이며, F-35B 전투기 12대와 헬기 8대 등 20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예정인데, 전체적인 형상과 제원은 이탈리아의 카보우르(Conte de Cavour)급 경항공모함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항모 도입 사업의 추진력
정부는 이른 시일 내에 이 항공모함 건조를 시작해 2029년까지 진수시키고, 2032년께 실전에 배치한다는 구상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업에는 탐색개발과 체계개발, 함 건조에 2조 원 이상, F-35B 전투기 20대(작전배치 12대 + 예비 8대)와 해상작전헬기 8대를 도입하는데 5조 원 등 7조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항모 도입 사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북한과 주변국의 위협 양상 변화 때문이다. 북한은 신형 탄도 미사일과 대구경 방사포를 개발해 실전에 배치하고 있고, 중국과 일본은 항공모함을 2~4척씩 도입하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항공모함 도입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항모 도입 사업에 강력한 추진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이 항모는 대일(對日) 용도 성격이 짙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항공모함이 북한과 중국, 일본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해군은 이 항공모함이 변화하는 외부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3만t 안팎의 덩치와 STOVL(Short Take Off and Vertical Landing) 방식의 함재 전투기를 운용하는 경항공모함의 태생적 본질과 개념에 대한 완벽한 몰이해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경항공모함의 원조는 1980년 취역한 영국의 인빈시블(Invincible)급 항공모함이지만, 이러한 개념의 시작은 1970년대 초 미 해군의 제해함(Sea Control Ship)이었다. 제해함이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량으로 건조돼 수송선단 호위에 투입되었던 호위항모(Escort Aircraft Carrier)처럼 일정 수량의 전투기를 싣고 함대 방공과 제한적인 대함 공격 임무를 수행하며 제해권 확보 임무에 투입하는 배를 말한다.
이 개념으로 탄생한 배가 영국의 인빈시블급과 스페인의 프린시페 드 아스투리어스(Principe de Asturias)이고, 이들이 취역한 뒤 세계 각국이 2차 대전형 구식 항모를 개조해 스키 점프대를 설치하고 해리어(Harrier) 전투기를 얹어 사용하면서 경항공모함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경항모는 애초부터 함대의 제해권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고, 이를 이용해 마치 정규 항공모함처럼 쓰겠다는 발상은 항공모함에 대해 기초적인 배경 지식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무지의 소산이다.
○ ‘일본 항공모함’에 대응할 능력도 없어
한국형 경항공모함의 함재기로 낙점된 F-35B는 F-35의 3가지 계열 기체 가운데 미 해병대용으로 개발된 수직 이착륙기 버전이다. 이 기종은 수직 이착륙을 위해 완전한 재설계를 거쳤기 때문에 공군용 F-35A나 해군용 F-35C와는 구조와 성능, 가격이 완전히 다르다.
미 국방부의 최신 계약 자료를 보면, 14차 저율초도 생산분 기준으로 공군용 F-35A는 1대에 7790만 달러, 해군용 F-35C는 1대에 9440만 달러다. F-35B는 1억 130만 달러로 가장 비싸다. 이 가격은 기체와 엔진을 합쳐 최소한의 비행이 가능한 전투기 그 자체 가격(Unit cost)만 의미하므로, 가장 복잡한 구조를 채택해 부품과 유지비용이 가장 높은 F-35B의 전체 도입 가격(Program cost)은 최소 2억 달러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F-35B는 F-35 시리즈 중에 가장 비싸지만,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다는 점 외에는 모든 면에서 가장 떨어지는 성능을 가지고 있다. 정규 항공모함용 F-35C가 1100km의 작전반경을 갖는 데 반해 F-35B의 작전반경은 833km에 불과하며, F-35C가 8.1t의 무장 탑재 능력을 갖는 데 반해 F-35B의 무장 능력은 6.8t에 그친다.
결정적으로 F-35B의 내부 무장창은 A/C형보다 작기 때문에 항공모함 탑재 전투기에게 반드시 필요한 핵심 무장 2종류를 운용할 수 없다. 바로 벙커버스터 역할을 맡을 2000 파운드급 폭탄과 공대함 미사일인 JSM(Joint Strike Missile)이다. 이 무장을 탑재할 수 없는 F-35B는 북한의 지하화된 시설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도, 주변국의 군함에 대한 공격 임무도 수행할 수 없다.
1000파운드 폭탄 2발을 싣고 북한 영공에 들어가서 폭격을 했다면 전속력으로 도망쳐야 한다. 내장 기관포가 없어 북한 전투기가 따라붙으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STOVL 방식 경항공모함에 탑재된 F-35B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대공 미사일 4발을 내부 무장창에 달고 최소한의 함대 방공 임무만 지원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 7조 원을 들여 이런 전력을 사올 생각이라면 차라리 이지스 구축함 4~5척을 더 사 오는 것이 전력지수가 더 높을 것이다.
북한에 대해 별 쓸모가 없다면 중국과 일본의 항모에 대응할 수는 있을까? 특히 대통령이 강하게 주문했다는 ‘일본 항공모함’에 대응할 능력은 될까? 이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가능하다.
일본은 공식 발표 배수량 2만7000t, 실제 배수량은 4만t급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되는 이즈모급 헬기항모를 지난 6월부터 JMU(Japan Marine United) 조선소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일본은 이 항공모함에서 12대의 F-35B 전투기와 8대의 SH-60K 해상작전헬기 등 20대의 함재기를 운용할 예정이지만, 방위성 안팎의 개조안(案)을 살펴보면 항모로 개조된 이즈모는 격납고에 최대 14대, 갑판에 최대 14대 등 최대 28대의 F-35B 탑재가 가능하다.
일본은 40대의 F-35B 도입을 확정했으며, 이들은 항공자위대가 13대를 도입하는 E-2D 조기경보기와 실시간 데이터링크를 통해 NIFC-CA(Naval Integrated Fire Control-Counter Air)를 구현함으로써 압도적인 원거리 공격 능력을 보유할 전망이다.
○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 가능성 검토
한국형 항모가 독도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붙는 2030년대 중반의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일본은 E-2D 조기경보기와 P-1A 해상초계기를 이용해 한국형 항공모함 탑재 F-35B 전투기의 초계 반경 밖에서부터 한국 항모전단을 탐지·추적할 수 있다. 일본 항모에서 발진한 F-35B는 자신의 레이더를 켤 필요도 없이 E-2D와 수상 전투함에서 전송한 한국 F-35B 위치를 확인해 200km 밖에서 미티어 공대공 미사일을 대량으로 쏟아 붓고 이탈할 것이다.
한국 전투기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일본의 또 다른 항모에서 발진한 F-35B들은 외부 파일런에 JSM 미사일을 주렁주렁 달고 와서 한국 해군 항모전단에 대량의 스텔스 미사일 공격을 퍼부을 것이고, 싸움은 30분이면 끝날 것이다.
중국을 상대로 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국형 항공모함이 배치된 2030년대 중반에 중국은 기존의 랴오닝과 산둥은 물론 현재 건조 중인 8만t급 정규 항공모함과 곧 건조가 시작될 10만t급 핵추진 항공모함을 운용하고 있을 시기다. 이 항모에는 J-15뿐만 아니라 J-20 또는 FC-31을 기반으로 한 스텔스 전투기들과 스텔스 무인 공격기들이 다량으로 탑재될 예정이다.
이들은 KJ-600 조기경보기와 정찰위성에서 확보한 한국해군 항모 전단의 위치를 바탕으로 초음속 대함 미사일 공격을 먼저 퍼부은 뒤 함재 전투기의 숫적 우위를 이용해 대대적인 공습으로 한국 해군 항모전단의 숨통을 끊어놓을 것이다.
이런 관측이 과장이나 망상으로 들리겠지만, 이 시나리오는 2015년 필자가 해군과 함께 수행한 항공모함 선행 연구인 ‘차세대 첨단함정 건조 가능성 검토 연구’ 보고서에 실려 있는 시뮬레이션 결과다. 당시 연구에서는 중국·일본의 건함 계획과 해·공군 항공전력 배치 현황을 수 개월간 수집하고,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RAND) 연구소의 전투기 교전비 등의 자료를 종합해 가상 교전 시뮬레이션을 수행했다. 그 결과 STOVL 방식의 경항공모함은 임무 수행은 고사하고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당시 연구에서는 12대 규모의 함재기로는 F-35B보다 성능이 우수한 F-35C라고 하더라도 종합작전능력 충족률이 37%에 불과하며, 최소 32대의 F-35C와 조기경보기를 확보해야만 종합작전능력 충족률이 89%에 근접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이러한 사실은 해군에도 보고됐다.
그러나 해군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해군 고위 장교들은 F-35B와 F-35C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들은 “사업비 6조~7조 원짜리 계획서와 11조~13조 원짜리 계획서를 올리면 어느 쪽이 통과되겠느냐”면서 “항모도 좋지만, 사업이 가야 할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 “우리가 대형 항모를 가지면 주변국이 반발하며, 주변국을 자극하면 사업이 못 간다”고 말하며 연구진이 제시한 항모 대신 2~3만t급의 경항모를 다시 제시해 보고서에 반영해달라고 압박했다. 이에 반발하자 보고서는 결국 7만t급 CATOBAR(Catapult Assisted Take Off But Arrested Recovery) 방식 정규 항공모함인 1안, 4만t급 CATOBAR 방식 중형 항공모함인 2안의 결론만 도출했다. 결국 해군은 이 보고서를 사장(死藏)시켰고, 새로운 용역 연구를 주어 입맛에 맞는 경항모 사업안을 끌어냈다.
○ ‘반일 프레임’을 이용한 지지도 끌어올리기
북한을 상대로 효과적인 공격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제대로 된 전투 자체가 불가능한 이런 배를 갖겠다는 것은 청와대의 ‘반일 프레임’을 이용한 지지도 끌어올리기, 그리고 여기에 편승한 해군의 ‘사업만 가면 된다’는 과욕 때문이다. 이런 욕심들이 만나 선체와 함재기까지 합쳐 7조 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국민 혈세가 들어가는 대한민국의 첫 항공모함을 평시에는 ‘대형 행사함’, 전시(戰時)에는 ‘움직이는 표적함’에 불과한 반쪽짜리로 만들려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이 항모는 정권의 ‘안보 업적’이 아니라 ‘안보 참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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