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야 알려주렴… 남도에 꼭꼭 숨은 보석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15일 03시 00분


[토요기획]전남 강진
‘비밀의 숲’ 백운동원림 여름에도 청량감
월출산 자락 녹차밭 마음까지 초록으로
극장통-저잣거리엔 레트로 감성 넘쳐

전남 강진군 강진읍에서 3km 떨어진 강진만 생태공원은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지역으로 수달, 큰고니, 큰기러기 등이 서식하고 갈대 군락지로 유명하다. 갯벌 사이로 길을 만들어 놨는데 썰물 때 갯벌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짱뚱어와 농게 등 각종 해양생물을 만날 수 있다.
전남 강진군 강진읍에서 3km 떨어진 강진만 생태공원은 탐진강과 강진만이 만나는 지역으로 수달, 큰고니, 큰기러기 등이 서식하고 갈대 군락지로 유명하다. 갯벌 사이로 길을 만들어 놨는데 썰물 때 갯벌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짱뚱어와 농게 등 각종 해양생물을 만날 수 있다.
《전남 강진은 생김새가 독특하다.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앙에 강진만이 있고 육지가 길게 그 사이로 뻗어 있어 영락없는 ‘바지’ 모양이다. 강진에 가면 간편한 바지 차림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봐야 할 것만 같다. 실제로 강진에는 발품을 들이면 찾을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바지를 닮은 강진 기행을 떠나보자.》

○ 계절마다 색이 바뀌는 월출산 자락
강진군 성전면에는 월출산 자락을 따라 보석 같은 곳들이 숨어 있다. 이 산 달빛길(3.6km)을 따라 무위사, 백운동원림, 강진다원, 월남사지를 차례대로 둘러볼 수 있다. 모든 장소들이 병풍처럼 우뚝 서 있는 월출산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여름에는 초록색 배경이지만 가을에는 붉은색, 겨울에는 흰색으로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한 번씩은 가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천년고찰인 강진의 대표사찰 무위사의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은 단청이 없고 독특한 양식의 지붕이 돋보인다.
천년고찰인 강진의 대표사찰 무위사의 대웅전 격인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은 단청이 없고 독특한 양식의 지붕이 돋보인다.
백운동원림·별서정원은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꼭꼭 숨겨져 있는 비밀의 정원 같다. 백운동원림은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동정원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백운동원림으로 들어가는 길은 마치 터널로 들어가는 분위기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나무들이 백운동을 감싸고 있어 한낮에도 그늘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숲 밖에서는 백운동원림이 어디 있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두꺼운 숲 사이로 들어서면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함이 느껴진다. 백운동원림은 조선시대 선비 이담로(1627∼1701)가 별서(별장)를 짓고 원림(집터에 딸린 숲)을 꾸민 곳이다. 별서 담장 옆으로는 계곡이 흐른다. 바위 위에 앉아 있으면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별서 안에도 정원이 꾸며져 있다. 소박하지만 운치가 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아담한 정원이다.

백운동정원 뒤 야트막한 동산에 오르면 월출산 옥판봉 바위 능선이 보인다. 다산 정약용은 백운동 12승경 중 이 풍경을 최고로 꼽았다.
백운동정원 뒤 야트막한 동산에 오르면 월출산 옥판봉 바위 능선이 보인다. 다산 정약용은 백운동 12승경 중 이 풍경을 최고로 꼽았다.
조금 높은 곳에 지어진 정자에 올라가면 월출산 옥판봉 바위 능선이 보인다. 강진에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이곳에 잠시 머물렀는데 옥판봉 바위 능선 풍경을 최고로 꼽았다. 다산은 백운동 주변 풍경에 반해 13편의 시를 짓기도 했다. 별서 담장 옆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있는데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다.

월출산 자락 곳곳에 있는 강진다원은 1982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에서 조성한 33만m²의 녹차 밭이다.
월출산 자락 곳곳에 있는 강진다원은 1982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에서 조성한 33만m²의 녹차 밭이다.
백운동원림을 지나면 또 다른 초록 세상인 강진다원이 펼쳐진다. 무위사에서 월남사지까지 월출산 자락에 넓게 조성된 녹차밭이다. 1982년부터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이 조성했다. 면적은 33만 m²에 이른다. 부드러운 곡선과 초록빛이 돋보이는 차밭은 월출산의 솟아오른 바위들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이곳은 전남 보성, 제주 다원에 비해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어서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찻잎에 반사된 햇살로 눈이 부시다. 차밭을 관리하기 위한 농로가 잘 포장돼 있어 산책하기에 제격이다.

고려시대에 세워졌다가 조선 중기에 폐찰된 월남사의 옛터에는 독특하게 검붉은 색을 띤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고려시대에 세워졌다가 조선 중기에 폐찰된 월남사의 옛터에는 독특하게 검붉은 색을 띤 월남사지 삼층석탑이 있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평지에 세워진 월남사의 옛터다. 현재는 삼층석탑(보물 제298호)과 진각국사비(보물 제313호)가 남아 있다.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른 삼층석탑은 회색빛의 다른 탑들과는 달리 검붉다. 초록빛의 월출산과 대비되는 색상이어서 멀리서도 눈에 띈다. 월남사지 바로 옆에는 이한영 전통차문화원이 있다. 이한영은 1920년대 국내 최초로 ‘백운옥판차’라는 차 상표를 만든 인물이다. 이곳에서 차를 마시며 다양한 차 관련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월남사지 인근 이한영전통차문화원에서는 국내 최초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왼쪽)를 맛볼 수 있다.
월남사지 인근 이한영전통차문화원에서는 국내 최초의 차 상표인 백운옥판차(왼쪽)를 맛볼 수 있다.
월출산 주변을 좀 더 오랫동안 눈에 담고 싶다면 달빛한옥마을을 추천한다. 10여 년 전 조성된 한옥 전원주택 단지로 한옥 숙박을 운영 중이다. 30여 채의 한옥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갖고 있어 마을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한옥집마다 특색 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아기자기한 재미 가득한 거리와 공원
강진군청이 있는 강진읍은 작은 규모지만 아기자기한 재미가 가득하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켜줄 볼거리들이 몰려 있다. 시와 시인의 이야기가 담긴 영랑생가, ‘강진의 명동’이라 불렸던 극장통 거리, 다양한 체험과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사의재·저잣거리 등은 가족, 연인이 찾기에 좋은 곳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유명한 시를 남긴 영랑 김윤식의 생가인 ‘영랑생가’는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해 원형 그대로 보존, 관리해오고 있다. 생가 뒤에는 세계모란공원이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 유명한 시를 남긴 영랑 김윤식의 생가인 ‘영랑생가’는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해 원형 그대로 보존, 관리해오고 있다. 생가 뒤에는 세계모란공원이 있다.
영랑생가는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 영랑 김윤식(1903∼1950)이 살았던 집이다. 김윤식은 ‘모란이 피기까지는’, ‘내 마음을 아실 이’ 등의 시로 잘 알려진 인물. 영랑생가는 안채, 문간채, 사랑채 그리고 꽤 넓은 뜰까지 갖춘 전통 가옥이다. 시인의 가옥이 잘 보존된 것은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해 원형 그대로 관리해 온 덕분이다. 생가 곳곳에는 시의 소재가 됐던 우물,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어 정겨움이 느껴진다. 영랑의 대표적인 작품이 새겨진 시비들도 세워져 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모란이 피기까지는’ 시는 안채 주변에 핀 모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안채 뒤쪽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과 동백나무 다섯 그루가 있다. 김윤식이 당대 최고 무용가였던 최승희(1911∼1967)와 사귀다가 헤어진 뒤 실연의 아픔으로 동백나무 가지에 목을 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영랑생가 뒤쪽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세계모란공원이 나온다. 4월에 피는 모란을 여름에 만나긴 쉽지 않다. 그러나 커다란 유리 온실에는 세계 각국의 모란이 자라고 있다. 꽃 피는 시기가 저마다 다르지만 이곳에선 언제 찾아도 한껏 꽃을 피운 모란을 만날 수 있다.

1960∼70년대 ‘강진의 명동’이라고 불렸던 극장통 거리에는 50년 이상 역사를 지닌 가게들이 여전히 문을 열고 있다.
1960∼70년대 ‘강진의 명동’이라고 불렸던 극장통 거리에는 50년 이상 역사를 지닌 가게들이 여전히 문을 열고 있다.

1960~70년대 ‘강진의 명동’이라고 불렸던 극장통 거리에는 50년 이상 역사를 지닌 가게들이 여전히 문을 열고 있다.
1960~70년대 ‘강진의 명동’이라고 불렸던 극장통 거리에는 50년 이상 역사를 지닌 가게들이 여전히 문을 열고 있다.
영랑생가에서 사의재를 향해 걷다 보면 극장통 거리가 나온다. 1962년 군 단위 최대 규모인 499석의 강진 최초 극장인 강진극장과 강진 최초 술 제조 공장인 은하소주가 있었던 번화가였지만 1980년대 후반 극장이 문을 닫은 뒤 점점 쇠퇴해 갔다. 다행히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면서 거리가 새롭게 단장돼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1964년 문을 연 뒤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매만진 태평이용원, 1977년부터 양복과 교복 등을 손으로 직접 만들고 있는 십자양복점 등 오랜 가게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현재는 없어졌지만 과거에 어떤 가게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알려주는 표지판이 가게마다 자리 잡고 있어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4년 동안 기거했던 곳이다. 사의재 주변에는 주막, 공방 등 저잣거리를 재현한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사의재는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4년 동안 기거했던 곳이다. 사의재 주변에는 주막, 공방 등 저잣거리를 재현한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사의재는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 처음 묵었던 숙소다. 그는 동문주막 할머니와 그 외동딸의 보살핌을 받으며 4년간 머물렀다. 골방 하나를 사용하며 사의재라는 현판을 걸고 6명의 제자도 가르쳤다. 현재의 사의재는 2007년 강진군이 복원한 것이다. 동문주막에서는 다산이 즐겨 먹었다는 아욱된장국과 부침개 등을 팔고 있다. 사의재와 맞닿은 곳에는 한옥마을처럼 꾸민 저잣거리가 있다. 청년 창업자들이 운영하는 다양한 공방과 카페 그리고 한옥체험관이 있다. 매주 주말에는 정약용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각색한 마당극 ‘땡큐 주모’ 공연을 연다.

강진만 생태공원에서는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짱뚱어들이 하나둘씩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진만 생태공원에서는 썰물 때 갯벌이 드러나면 짱뚱어들이 하나둘씩 나와 일광욕을 즐기고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진읍에서 약 3km 거리에 있는 강진만 생태공원에서는 짱뚱어들의 각본 없는 공연을 볼 수 있다. 이 일대의 넓은 습지와 갯벌에 1131종의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갯벌 사이로 길을 만들어 놨는데 썰물 때 갯벌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짱뚱어를 볼 수 있다. 수많은 짱뚱어들이 갯벌 속에서 나와 점프를 하고 노니는 모습은 언제 봐도 탄성이 나온다. 짱뚱어와 함께 농게 등 각종 해양생물도 만날 수 있다.

강진은 자연과 역사가 조화를 이룬다. 걸어서 둘러보면 소소한 즐거움이 더욱 커지는 명소다.
QR코드를 스캔하면 강진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강진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글·사진 강진=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전남 강진#월출산#영랑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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