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미국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비무장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 씨(29)가 백인 경찰의 총에 맞은 사건으로 11월 대선을 앞두고 인종차별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야당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총격이 미국의 영혼을 관통했다. 즉각 진상을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며 이를 대선 쟁점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제2의 플로이드 사태’로 부르고 있다. 5월 25일 위스콘신과 인접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비무장 흑인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관의 잔혹 행위로 숨진 사건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에는 블레이크 씨의 어린 세 아들이 타고 있는 차에서 아버지가 경찰에 총격을 당했다는 점이 시위대 분노를 키우고 있다. 블레이크 씨의 부친은 시카고선타임스에 “아들이 현재 하반신 마비 상태”라고 밝혔다. 영구 손상으로 최종 판정이 나올 경우 시위가 더 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24일 커노샤에는 주 방위군이 투입됐다. 경찰은 통행금지 시각인 오후 8시를 앞두고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최루탄을 발포했다. 수백 명의 시위대는 ‘정의 없이 평화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법원 앞에서 늦은 밤까지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전날 시위로 불에 탄 트럭을 다시 불태웠고 인근 자동차 판매점에서는 시위대 공격으로 차 100여 대가 불타거나 훼손됐다. 최소 건물 3채가 불에 탔고 일부 가로등도 쓰러졌다. 이날 미 전역에서 인종차별을 규탄하는 시위가 잇따랐다.
정치권은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대선 선거인단 538명 중 10명이 걸린 위스콘신은 쇠락한 공업지대(러스트벨트)의 대표적인 지역이자 대선 결과를 좌우할 주요 경합주로 꼽힌다. 2016년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낙승이 예상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0.7%포인트 차로 이겼다. 이에 민주당은 올해 전당대회를 위스콘신에서 개최하기로 했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을 화상회의로 대체했다.
바이든 후보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인종차별은 미국의 고질적 문제다. 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을 위해 싸우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소속인 토니 에버스 위스콘신 주지사는 “블레이크가 미국과 위스콘신에서 공권력의 총에 맞은 첫 번째 흑인이 아니다”라며 인종차별 가능성을 지적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는 ‘블레이크가 가정 폭력 및 성범죄, 경찰 공격 전력이 있다’는 주장을 담은 글을 리트윗했다. 그는 커노샤 현지에서 차량이 불타는 영상을 공유하며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 당신이 사는 곳 근처에 이런 장면이 펼쳐진다. 이것이 평화로운 시위”라고 비꼬았다.
사건의 정황도 속속 밝혀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블레이크 씨가 피격 당시 차량이 긁힌 것을 두고 싸우는 여성들을 말리고 있었고, 경찰이 엉뚱하게 블레이크 씨가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고 판단해 총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은 100만 건 이상 조회돼 흑인 사회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