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칼럼]국민이 정부를 더 걱정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8일 03시 00분


8·15행사 계기로 국민들 큰 충격… 역사 심판의 권한 어디서 받은 건가
선의의 국민은 정부의 적이 아니다, 국민은 ‘자유의 권리’ 포기 않을 것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정부의 임기는 5년이다. 그러나 국민의 역사적 단위는 100년이다. 평균수명이 80년이기 때문이다.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는 국민을 위하고 섬기는 의무를 경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권욕에 사로잡혀 국민을 수단으로 삼거나 정치이념을 위해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훼손하고 억제한다면 그 결과는 정권의 종말과 사회적 범죄가 된다. 이승만 정권이 4·19사태를 유발했고,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과 함께 비극적 운명을 자초했다. 모든 독재정권과 공산주의 국가가 그 전철을 밟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선한 질서와 정의로운 국정에 따르는 정부의 ‘자기 동일성’과 건설적인 행정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의 업적을 의도적으로 폄하하거나 부정해 국민의 의욕과 희망을 좌절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특히 현 정부와 같이 진보를 가장한 19세기적 이념정치를 위해 과거에 건설했던 업적과 정치 방향을 왜곡하거나 역행하는 시행착오를 거듭해서는 안 된다. 젊은 세대들의 선한 의지와 욕망을 좌절시키고 국민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남기게 된다.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실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의 정신적 기본가치를 거부하고 윤리질서까지 병들게 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가. 현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정의와 공정의 가치와 질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정직과 진실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는가. 선전이 진실을 만들 수도 없고 통계의 조작적 선택이 진실의 결과를 남기지 못한다. 대통령의 약속과 대국민 비전을 국민들이 믿고 따르는지 살펴보라. 청와대나 여당 지도자들의 발언을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사람들의 언행은 국민들의 의구심을 더해줄 정도이다. 과거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앞길을 그르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정권욕이었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경제정책의 실패나 행정의 난맥상에 그치지 않는다. 현 정부 3년여 동안 선과 악의 가치관까지 희석되고 있다. 정권의 주체인 운동권 출신들의 사회적 평가는 어떠한가. 국민정신을 유지 육성해 오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희생적 정신을 누가 허물어 버렸는가. 대권주자부터 서울시장, 부산시장을 비롯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주인공들은 누구였는가. 그 해결책을 알면서도 머뭇거리는 법 집행자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힘겨루기가 법무질서 회복의 길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그 배후에는 국정연극의 주역이 있다고 보는 것이 국민의 상식이다. 모든 국정은 우리가 할 수 있고, 우리가 하는 일에는 잘못이 없다는 운동권적 진영논리를 버리지 못하면 이 정권에는 희망이 없다.

8·15 경축행사를 계기로 국민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건설적 선택인지 찾아보기 힘들었고, 광복회장의 발언은 국민의 의구심을 그대로 입증해 주었다. 누구로부터 그런 역사 심판의 권리를 받았는지 묻고 싶었다. 그 발언에 대해 ‘할 수 있는 경축사’라고 공감하는 여당 지도부와 침묵을 지키는 청와대를 보면서, 100년 역사를 바라보는 생각 있는 국민들은 나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를 걱정하지 않는 국민이 어디 있는가. 자신의 생명과 연결되는 병마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 비를 맞으면서 광화문광장으로 운집했던 애국시민들의 심정을 현 집권자들이 정치 수단으로 삼거나, 정책의 방향 전환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들도 우리 국민의 한 사람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현 정권에 대한 성실하고 책임 있는 자기반성과 애국적인 선택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야당이 배제된 여당뿐이다. 그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 선의의 국민들은 절대로 정부와 여당의 적도 아니며 버림받아서도 안 된다. 그런 국민들이 따르지 않는다고 멀리하거나 적대시한다면 현 정권은 국민들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누구도 이런 역사적 현실에 대한 정론(定論)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100년 미래를 위한 역사의 방향은 뚜렷하다. 더 많은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자유와 평화의 원천이 되는 인간애의 길이다. 우리는 그 이상을 자유민주주의의 의무라고 믿는다. 국민은 주어진 자유와 행복의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 그 권리를 저해하는 정권을 용납해서도 안 된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국민#정부#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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