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계에서 큰 돈 벌었다는 사람들처럼 나도 요트를 샀다. 오래된 프랑스 군함이고 이름은 루이즈 미셸이다.”
영국의 ‘얼굴 없는 예술가’ 뱅크시가 28일(현지시간) 인스타그램을 통해 요트를 샀다고 밝혔다. 2018년 경매에서는 15억 원에 팔린 자신의 그림을 파쇄 하더니, 이번엔 ‘플렉스’를 하려는 걸까? 사실은 정반대다. ‘루이즈 미셸’은 지중해에서 표류한 ‘보트 피플’, 난민을 구호하는 구조선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뱅크시는 지난해 9월, 구조선 여러 척을 운영한 선장 피아 클렘프에게 편지를 보냈다. 클렘프는 최근 수 년 간 선장으로 활동하며 난민 수천 명을 구조한 활동가다. 이 편지에 따르면 뱅크시는 난민 위기를 다룬 작품으로 번 돈을 자신이 가질 순 없다, 구호활동에 써달라는 의사를 밝혔다.
“안녕 피아, 당신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나는 영국 출신의 예술가로, 최근 난민 위기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걸로 번 돈을 내가 가질 순 없다. 새 배를 사거나 필요한 데 써주면 좋겠다. 당신의 생각을 알려주길 바란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던 클렘프는 뱅크시에게 재정적 지원만 받고, 운영은 활동가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협업을 시작했다.
프랑스 세관이 소유하고 있던 작은 배에는 분홍색 페인트와 뱅크시의 트레이드마크 ‘소녀’ 그림이 그려졌다. 지난해 8월 스페인에서 출항한 이 배는 유럽의 활동가 10명이 선원으로 운영하고 있다. ‘법을 지키며 위기에 처한 사람은 편견 없이 구한다’는 원칙으로 지중해를 오가며 이미 100여 명의 목숨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뱅크시가 이를 뒤늦게 알린 것은 배가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루이즈 미셸호는 트위터를 통해 “선원 10명과 난민 219명과 배에 있다. 탑승 인원이 너무 많고 구조선 옆 고무 보트 때문에 더는 움직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유럽 각국 구조 당국에 연락을 취했지만 회신을 받지 못했다”며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제이주기구(IOM)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루이즈 미셸 호의 상륙 및 이주민 하선을 촉구했다. 이후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가 이주민 49명(여성 32명, 어린이 13명, 남성 4명)을 구조했다. 루이즈 미셸호에 남은 승객은 130명, 이 배의 최대 탑승 인원은 120명이다.
유엔에 따르면 26일 리비아 해안에서 난민 선박의 엔진이 폭발해 어린이 5명을 포함한 난민 45명이 사망했다. 올해 지중해를 건너려다 바다에서 사망한 난민은 최소 500여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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