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농민들은 쌀밥이 소원이었다. 산으로 가로막힌 강물을 농지로 끌어오기 위해 굴을 뚫기 시작했다. 삽과 곡괭이밖에 없는 이들 농민에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강물이 드디어 농지를 적시기 시작했다….’ 1963년 개봉된 신상옥 감독, 최윤희 신영균 주연의 영화 ‘쌀’의 줄거리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방우리의 실제 이야기가 소재가 됐다.
하지만 이 영화를 소개한 대부분의 자료는 전북 무주구천동의 한 마을 이야기라고 전한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30가구 50명가량의 주민이 사는 방우리는 그동안 무늬(행정구역)만 금산이었다. 부리면사무소(현내리)에서 볼일을 보려면 무주읍을 거쳐 먼 길을 돌아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리면 수통리를 거쳐 면사무소에 가야 했다. 하지만 금강이 이리저리 길게 막아선 수통리까지는 도로도 다리도 없었다. 금산군 관계자는 “갈수기에 힘 좋은 지프 정도나 방우리와 수통리를 오갈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비라도 내려 강물이 불어나면 방우리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금산의 섬’으로 변했다.
이런 까닭에 무주를 생활권으로 두었던 방우리가 마침내 금산의 품안에 안기게 됐다. 금산군은 금강유역환경청과 협의를 마쳐 수통리∼방우리 간 연결도로를 연내 착공할 계획이라고 30일 밝혔다. 이 연결도로는 10여 년 전 4대강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지만 환경 문제 등이 제기돼 무산됐다. 2014년 도로 개설을 위한 주민협의체가 구성돼 재추진했으나 금강유역환경청이 금강 상류 오염을 우려해 거듭 환경영향평가 보완을 요구하면서 지연됐다.
이에 따라 군은 관련 부서인 건설교통과와 환경자원과, 그리고 충남도의 농촌활력과, 기후환경정책과 등과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에 나섰다. 최소한의 도로를 개설하고 그 주변을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난개발 방지책으로 최종 합의를 이끌어 냈다. 방우리 이장 설광석 씨는 “방우리 주민들은 그동안 무주에서 장을 보고 교육을 시키고 전화도 전북 지역번호(063)를 사용하며 전북 방송을 시청해 왔다”며 “이제나마 명실상부하게 금산 주민이 돼 기쁘다”고 말했다.
수통리∼방우리 간 도로는 2.62km로 다리 2개가 포함돼 있다. 도로는 승용차와 마을버스 등 소형 차량만 다닐 수 있도록 중앙차선이 없는 폭 5m로 건설한다. 군 건설교통과 안한빈 주무관은 “도로 주변을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대형 관광버스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길을 좁게 만들어 천혜의 환경을 그대로 보존할 계획”이라며 “이런 취지에 맞춰 2개의 다리도 각각 길이 150m가량의 잠수교로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을 외부로 다니는 방우리 주민들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배편으로 무주에 학교를 보내다 큰 변을 당한 마을의 아픈 역사 때문이다. 1976년 6월 8일 방우리와 인근 내도리(전북 무주읍) 주민 18명이 무주를 오가는 배가 전복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사망자의 대부분은 학생들이었다.
시인 모윤숙의 애도시가 나중에 세워진 내도리 앞섬다리 인근의 추모비에 새겨져 있다. ‘세찬 물결 달려와/그 귀한 목숨을 삼켜 갔으니/엄마 엄마 숨차게 허덕이다가/애처롭게 사라져간 넋들이여….’
문정우 금산군수는 “금산군민이면서 소외됐던 방우리 주민들에게 앞으로 군의 문화·복지 혜택을 전해줄 수 있게 돼 기쁘다”며 “방우리에 우수한 자연경관이 있고 더불어 멸종위기종 등 다양한 야생생물이 서식하는 만큼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기 위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추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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